문용형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문용형
文龍炯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인민군 총위

신상정보
출생일 1920년 10월 4일(1920-10-04)
출생지 일본제국령 조선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 솔안마을 (지금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함흥시)
사망일 1978년 4월 7일(1978-04-07)(57세)
사망지 대한민국 부산시 영도구 (지금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국적 일본제국령 조선(1920~1945)
소련 민정청(1945~1946)
북인위(1946~194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1950)
대한민국(1950~1978)
학력 함흥농업고등학교 졸업
경력 일본제국령 조선 함주군 흥남읍사무소 농업계 계장(1940~194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주군청 농무과 과장 겸 인민군 총위(1950.10~12)
대한민국거제포로수용소 포로(1951.2~1953)
본관 남평
부모 아버지 문정기,어머니 신안 주씨
형제자매 2남 4녀 중 차남
자녀 2남 3녀
친인척 조부 문도종

문용형(文龍炯, 1920년 10월 4일 ~ 1978년 4월 7일)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의 부친으로, 본관은 남평이다.

생애[편집]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 솔안마을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출신으로 경상남도 부산부(지금의 부산광역시) 로 이주한 이주민이다. 1936년 함흥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0년 졸업 이후, 함주군 흥남읍사무소 농업계장, 과장을 역임했다. 2023년 9월 7일까지는 문용형이 1940년에 일본 제국주의 정권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해당 일자 이후 문용형이 공직에 취임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은 '문용형이 공무를 역임하기 시작한 시기는 졸업 이후 5년 후인 해방 이후'라는 “사견”을 밝힌 바 있다.[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이 들어선 이후 문용형은 주군청 농무과 과장으로 전임하였으며, 2개월 간 그 직책을 맡았다. 농무과 과장 재임 중 강한옥과 만나 결혼하였고, 한국 전쟁 발발 후 흥남 철수 작전 때 아내와 같이 경상남도 거제군(지금의 거제시)로 피난을 갔으며, 명진리 남정마을에 정착했다. 거기서 자녀들을 낳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증거는 없으며 농무과 과장 재임중 인민군 총위(현 인민군 상위계급에 해당)의 직책으로 남파 임무 수행중 포로로 잡혔다는 말도 있다.

문용형은 자신의 공무원 경력(인민군 장교)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의 포로가되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포로수용소에서 일을 하였다. 1960년 문씨 가족은 경상남도 부산시로 이사를 갔다.

1978년 부산시 영도구에서 심정지로 별세하였다.

논란[편집]

6.25 전쟁 당시 흥남 철수 때 월남한 것이 아니고 원래는 인민군 장교로 참전하여 영천 전투에서 학도병들에게 생포당하여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석방되어 남한에 정착한 것이라는 의혹이 2021년부터 제기되고 있다.[2][3][4]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