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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비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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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비다토리(러시아어: Ликвидаторы, 우크라이나어: Ліквідатори, 영어: liquidators)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철거・제염작업에 종사한 사람들을 말한다. 단수형으로는 릭비다토르(러시아어: Ликвидатор, 우크라이나어: ліквідатор). 원래 릭비다토르란 “청산인”이라는 뜻으로 무언가 뒷처리하는 사람 전반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다. 정식 명칭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청산작업 참여자(러시아어: участник ликвидации последствий аварии на Чернобыльской АЭС). 이 정식 명칭은 릭비다토리에게 수여된 훈장에 새겨져 있다.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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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청산 작업은 광범위한 업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출신과 역할도 다양했다.

  • 체르노빌 발전소 운영요원
  •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관
  • 오염된 잔해들의 철거작업에 참여한 군 장병들
  • 치안 유지 및 소개작업에 종사한 경찰들
  • 군사 및 민사 위생요원들
    • 전염병 발생을 막기 위해 비워진 집들에 남겨진 음식물을 치운 여성 청소노동자들
    • 방사능에 오염된 동물들을 안락사한 수렵분대원들
  • 헬리콥터 작전과 공중 방사능 모니터링에 참여한 공군 대원들 및 비행사들.[1]
  • 그 밖에 사고 처리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 과학자, 공학자, 노동자들
    • 운수 노동자들
    • 방사능 물질이 지하 대수층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지하를 파내려간 탄광 노동자들
    • 건설 전문가들
  • 사고를 기록한 언론인들

건강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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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986년과 1987년 두 해에만 24만 명의 노동자들이 소집되었고, 이후 60만 여명이 릭비다토리로 인정하는 인증서를 발급받았다.[2]

1990년까지 체르노빌 청산작업 개별 작업자들이 노출된 방사선량은 최소 10 밀리시버트에서 최대 1 시버트에 이르렀고, 대부분 외부피폭이었다. 평균치는 120 밀리시버트이고 피폭자의 85%가 20 - 500 밀리시버트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 피폭량 통계에는 큰 불확실성이 있다. 불확실성 정도는 작게는 50%에서 크게는 5배에 이르며, 특히 군 장병의 피폭량 기록이 높은 값으로 편향된 것으로 생각된다.[3] [[UNSCEAR]에서는 총 53만 명의 작업자가 총 6만 사람시버트에 노출된 것으로 추산한다.[3]

원자로 폭발 당시에 휘말려서 급성방사선증후군(ARS)으로 사망한 사람이 31 - 54명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략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만,[4][5][3] 방사능의 만성효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해서는 확실한 정설이 없다. 최소 4천 명(2005-2006년 UN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3국 정부의 공동컨소시엄 조사결과)부터 9만 3천 명 이상이라는 설까지 들쭉날쭉하다.[6][7][8][9][10]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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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Воздушная битва при Чернобыле" in Aviatsiya i Vremia magazine, 2011, #2 (러시아어)
  2. “WHO: Health Effect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Special Health Care Programs, 2006, p.2” (PDF). World Health Organization. 
  3. United Nations Scientific Committee on the Effects of Atomic Radiation (April 2011). “Annex D. Health effects due to radiation from the Chernobyl accident” (PDF). 《Sources and Effects of Ionizing Radiation UNSCEAR 2008, Report to the General Assembly with Scientific Annexes》. United Nations. 
  4. “The impact of Chernobyl's nuclear disaster 33 years later”. 《PBS NewsHour Weekend》. 2019년 4월 21일. 2019년 5월 9일에 확인함. 
  5. Wellerstein, Alex (2016년 4월 26일). “The Battles of Chernobyl”. 《The New Yorker》. 2019년 5월 10일에 확인함. 
  6. Parfitt, Tom (2006년 4월 26일). “Opinion remains divided over Chernobyl's true toll”. 《The Lancet》. 1305–1306면. 2019년 5월 8일에 확인함. 
  7. Ahlstrom, Dick (2016년 4월 2일). “Chernobyl anniversary: The disputed casualty figures”. 《The Irish Times》. 2019년 5월 8일에 확인함. 
  8. Mycio, Mary (2013년 4월 26일). “How Many People Have Really Been Killed by Chernobyl? Why estimates differ by tens of thousands of deaths”. 《Slate》. 2019년 5월 8일에 확인함. 
  9. Ritchie, Hannah (2017년 7월 24일). “What was the death toll from Chernobyl and Fukushima?”. 《Our World in Data》. 2019년 5월 8일에 확인함. 
  10. Highfield, Roger (2011년 4월 21일). “How many died because of the Chernobyl disaster? We don't really know (Article updated May 7, 2019)”. 《New Scientist》. 2019년 5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