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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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성 루가

루카스기독교의 전승에 따라 루카스의 기쁜 소식사도행전의 편집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루카스는 파울로스의 주치의 또는 제자로 간주된다. 기독교 회화에서 그의 상징은 인데, 이는 루카스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을 표현한 것이다.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축일은 10월 18일이다.

행적[편집]

전승에 따르면 루카스는 복음사가 중에서 유일한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이며, 안티오키아 출신이며, 의사 출신이었으며, 미혼이었고, 84살에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이집트)에서 죽었는데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졌다. 하지만 신학자중에는 루카스가 노예출신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사도행전에서는 파울로스의 두 번째 전교 여행 중에 나타나는데 루카스는 파울로스의 인간적 인품에 매료되어 깊이 존경하고 따랐다. 파울로스가 세 번째 전교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몇 해 동안 필리피에 머물다가 파울로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파울로스가 카에사리아에 수감되어 2년간 미결수로 있었을 때 그의 곁에 2년간 머물렀다. 이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루카스가 복음서를 쓴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으나, 성서학자들은 루카스가 루카스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의 어록문서로 추정되는 문서인 Q문서마르코스의 기쁜 소식을 자료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로마로 향하는 파울로스의 위험한 여행에 동반했으며 파울로스의 충실한 동료가 되었다. 파울로스는 "루카스만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2티모 4,11)라고 기록했다.

루카스의 직업은 의사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4장 14절)에 보면 그를 “우리들의 사랑하는 의사”라고 불렀으며, 루카스의 기쁜 소식에는 많은 의학용어가 등장한다. 혈루병에 걸린 여인 대한 공관복음의 서술에 보면, 유독 루카스에만 "용하다는 의원들은 다 찾아보았으나 돈만 날리고 말았다"는 서술이 없다. 이를 의사로서 자신의 직업을 옹호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한다.

서기 70년과 85년 사이에 루카스는 신약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루카스의 기쁜 소식사도행전을 저술하였는데, 그는 이 두 책에서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나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리스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도한 것이다. 루카스의 기쁜 소식을 보면 루카스가 고전적인 그리스 문체에 매우 뛰어났으며 유대교의 원전에 대한 지식도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그가 실제로 본 것을 쓴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파울로스에 대한 전승을 수집하여 편집한 신학 문서들이다.

전설에 따르면 루카스는 맨 처음 성모 마리아를 그린 사람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는 루카스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오는 ‘로마 백성의 구원(Salus Populi Romani)’이라고 불리는 성모 마리아 이콘이 있다. 몇몇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서기 590년에 로마에 흑사병이 창궐할 적에 이 역병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행렬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모시고 간 성화 즉, 이콘이 성모 성화상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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