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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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오른쪽 열한번째는 이승만, 가운데 단상에 선 이는 안창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Korean National Association)는 19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용만, 이승만, 안창호 등에 의해 창설된 미국내 독립운동단체였다. 당시 미국 하와이의 합성협회와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의 연합으로 창설되었던 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대동보국회와도 연합하여 대한인국민회로 발전하였다. 이때 국민회 헌장을 자체적으로 규정하였다.

개요[편집]

또한 자체적으로 국민회라는 회보 겸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1912년에 대한인국민회는 확대회의를 통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상항지방총회, 하와이지방총회, 만주리아지방총회 서백리아지방총회를 상항에 조직함으로써 조직의 범위를 넓혔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중앙총회와 북미지방총회, 하와이에 하와이지방총회, 만주리아지방총회, 서백리아지방총회를 결성하였다. 지방총회 아래에는 지방회가 있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세계적인 조직이 되었다. 1915년, 신한민보 이대위 목사가 인터탑입한글 식자기를 발명하였다. 이를 이용해서 신한민보를 발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이승만이 대한인국민회를 탈퇴해 동지회를 설립한 후 안창호가 속해 있는 대한인국민회와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2년 4월 이후 국민회는 이승만의 영향력하에 놓이게 되었다. 상하이 훙커우 공원 사건으로 안창호가 체포되었던 것이다. 뒤에 출소했으나 1938년 안창호가 병으로 죽으면서 국민회 역시 이승만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 뒤 1945년 이승만이 귀국한 뒤에는 임병직, 이원순 등을 통해 국민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60년 이승만이 하야한 뒤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도자 없이 순수 교민 단체로 변모하였다.

대한인국민회의 건물[편집]

1935년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하였던 대한국민회 주변지역에 Bay Bridge 건설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대한국민회관은 철거되었다. 이후, 1938년에는 국민회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고 이곳에 대한인국민회관이 준공되었다. 이후 1974년 국민회관은 LA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매각되었다. 2003년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으로 대한인국민회관을 복원하였고 개관한 것이 현재에 이른다.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은 일반인도 방문이 가능하다.

같이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