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봉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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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당시의 유럽의 상황
색이 진할수록 프랑스의 지배를 많이 받는 국가

대륙봉쇄령(大陸封鎖令, 영어:Continental System, Continental Blockade)은 프랑스 제국과 그 동맹국의 지배자였던 나폴레옹 1세가 당시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영국을 봉쇄한 뒤 프랑스와 통상(通商)을 맺게하여 유럽대륙의 경제를 지배하기 위해 내놓은 경제봉쇄명령이다.

내용[편집]

1806년 11월 21일 베를린에서 발령했기에 베를린 칙령이라고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프랑스 국민과 프랑스의 동맹국과의 마찰을 야기했고, 더해서 나폴레옹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에 종속됐던 유럽의 여러 나라 및 북유럽은 대륙봉쇄에 참가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대륙 여러나라는 풍부한 경제력을 가진 영국과 통상무역이 이루어지지 않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말았다. 거꾸로 영국이 프랑스를 봉쇄하기 위해 해상봉쇄에 나서게 되자, 처음엔 중립을 선언한 미국과 이해관계가 대립하여 1812년 영미 전쟁이 발발했다. 영국측도 아무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후 경제는 불황을 맞이했고, 프랑스측의 해적선이 암암리에 활동을 벌여 상선은 약탈당했고, 국내에서는 국민의 폭동, 수상의 암살, 영국국왕의 발광, 그리고 영미 전쟁등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국면을 맞았다. 프랑스는 어느 정도 성공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 동맹국은 영국의 불황을 초래하고도 그 수혜를 받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이 일어나게 되었다.

대륙봉쇄령은 유럽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없었고, 반나폴레옹 정책을 고수한 스웨덴이 거부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러시아 제국을 움직여 스웨덴을 굴복시키고 봉쇄령에 참가시키게 했다. 그러나 반대론은 끊이지 않았고, 포르투갈이 협력을 거부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이베리아 반도에 군대파병을 결정했으나, 그 때문에 스페인의 정쟁(政爭)에 개입하게 되어 이득없는 이베리아 반도전쟁의 진흙탕에 빠져들게 되었다. 효과가 없는 대륙봉쇄의 실상을 보게 된 러시아 제국은 1810년 대륙봉쇄령을 파기하고 영국과 무역을 재개했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법령을 파기한 러시아를 본보기로 삼아 처벌하기 위해 러시아 원정(1812년)을 감행했으나, 러시아의 초토화 작전에 따라 대패를 당해 몰락을 초래하였다.

대륙봉쇄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모순을 안고 있었다. 첫 번째, 영국을 대신해 프랑스 산업이 유럽시장을 독점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군사지배와 연결된 프랑스의 종속정책에 대한 불만이 강해졌다. 두 번째, 영국에 비해 사업화의 진행이 늦은 프랑스 산업은 영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다. 세 번째, 대륙 여러 국가들은 교역을 기반으로 한 네덜란드 및 한자 도시, 농업국인 러시아, 프로이센, 이탈리아, 스페인, 공업이 비교적 발달된 서남 독일 등 다양한 국민경제를 갖고 있었고, 이것은 영국과의 교역관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총체적으로 보면 1806년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은 모두 대륙봉쇄령에 관련된 것들이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