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렌티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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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렌티노 전투
나폴리 전쟁 중 일부의 일부
Battle of Tolentino.jpg
1815년 5월 2일 전투 지도.
교전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 Flag of the Kingdom of Naples (1811).gif나폴리 왕국
지휘관
오스트리아 제국 프리드리히 비안히 Flag of the Kingdom of Naples (1811).gif 조아생 뮈라
병력
11,938명
대포 28문
25,588명
대포 58문
피해 규모
700명 전사
100명 부상
1,120명 전사
600명 부상
2,400명 포로

톨렌티노 전투조아생 뮈라나폴레옹백일천하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발발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조아생 뮈라는 패배하여 조아생 뮈라의 인생 자체가 망하고 만다. 인생이 망하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나폴레옹 장군님의 여동생이자 아내가 배반하라한뒤 그뒤 100일 천하로 인해 자신이 미안한 마음과 동시 도우려 하기위해 5월에 외스터라이히 제국과 전쟁을 한다. 군대 수적으로는 나폴리 왕국이 우세하지만 오히려 변수를 보였다 조아킴 뮈라는 기병대가 아닌 포병대를 가지고와 싸우다가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그는 나폴레옹 장군님의 최고의 기병으로써 [아일라우 전투]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만해도 가장 치열한 전투인 모스크바 서쪽 110km로 떨어져 있는 보로디노 대평원에서 양측다 정면전으로 붙은 [보로디노 전투] 기병을 이끌고 활약하였다. 사실 포병보다는 기병만 있으면 적을 물리칠수 있지만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 나 이긴다해도 제2의 워털루에서 패망할것이다. 그의 인생은 망해버려 재기가 불가능한 이 전투였다

결과[편집]

뮈라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2배가 넘는 병력으로 전투를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패했다.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한 뮈라는 그나마 남아있던 병력마저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되고 만다. 뮈라는 재기하기 위해 코르시카로 도주했다. 이후 뮈라는 칼라브리아섬에서 나폴리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붙잡혀 총살당했다. 그뒤 인생이 망한 수준이 아니고 그 이상이였다 잡혀서 총살당하고 만다. (죽을때 자기의 잘생긴 얼굴에 총을 쏘지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