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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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날짜 1995년 4월 28일
시간 7시 52분경 (KST)
위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원인 과실(도시가스관 천공)
원인미상(폭발을 야기한 불씨)
최초 보고자 대구달서소방서
참여자 대구도시철도공사, (주)표준개발, 달서구청,
사망자 101명
부상자 202명
재산 피해 약 540억원
조사 지하매설물의 전산화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1995년 4월 28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공사 도중에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이다.[1]

개요[편집]

  •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영남고교 사거리 지하철 1호선 제 1~2구간 공사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이다. 이 사고는 사고발생지역 남쪽지점에 있는 대구백화점 상인지점 신축공사장에서 그라우팅을 위한 천공작업을 위해 75mm 구멍 31개를 굴착 중 실수로 천공기로 도시가스 배관을 관통시켜 구멍이 뚫림으로써 가스가 누출, 인근 하수구를 통해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돼 원인미상의 불씨에 의해 폭발한 사고이다. 폭발음과 함께 50여 m의 불기둥이 치솟았으며, 이 사고로 학생 42명을 포함해 101명 사망, 20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 통행을 위해 공사장 위에 임시 설치한 복공판 400m가 무너졌고, 건물 346채, 자동차 152대가 파손되어 피해액은 540억원에 다다른다. 이는 역대 세계 지하철 참사 가운데 사상자 규모에서 3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 사고가 발생하자 오전 8시 20분에 달서구청 대회의실에 1지휘소 10개소 350명으로 구성된 대구광역시 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되었으며, 이후 5월 3일 에는 사고수습본부로 개편되어 5개 반 160명으로 운영하였다.
  • 응급조치사항으로 1995년 4월 28일 11시 30분에 주민 및 교통통제를 위하여 경계구역을 설정하였으며, 15,369명(공무원 5,000명, 소방 2,525명, 경찰 3,379명, 의료진 1,389명, 군인 30명, 기능인력 3,046명)의 인력과 1,025대(중장비 747대, 구조차량 278대)의 중장비가 투입되었다. 또한 의료기관으로 20개의 병·의원이 참여하였다. 5월 1일 에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지하시설물과 1995년 5월 12일에는 지하철복공판 등 기존의 시설물 등에 대한 응급복구가 이루어졌으며, 1995년 5월 12일 오전 4시에는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 사상자 조치사항으로 사망자는 9개 병원에 분산 안치되었으며, 병원별 합동분향소 설치, 사망자 1인당 공무원 2명씩 총 20명의 안내공무원을 고정 배치하였다. 그리고 장례 후에는 구청 간부공무원이 시장을 대신하여 상가를 조문하였다. 부상자에 대한 조치로는 경미한 부상자 87명은 단기 치료 후 귀가하였으며, 입원환자 115명은 12개 병원에 분산 수용하였고, 안내공무원 70명을 상근 배치하였다.
  • 이 사고로 회사 관계자 9명이 구속되고 도시가스사업법등의 관계 법령의 개정을 가져왔다.

원인[편집]

  • 도시가스 사업법에 가스배관은 지하 1m이상 깊게 매설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상인동 가스관은 불과 지하 30cm에 묻혀 있었다.
  • 대형 공사장에서 지하 굴착을 할 경우에는 해당관청의 도로굴착 승인을 득한후 가스관을 매설한 회사와 연락하여 가스관이 묻힌 위치를 문의한 후 공사를 진행해야 하나 공사 관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무허가 굴착 작업을 진행하였다.
  • 관할관청의 담당자들도 현장관리에 소홀하여 안전조치를 원칙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 가스회사의 근무인원이 소수에 불과하여 도심지 지하에 광범위하게 매설되어 있는 가스관로 주변의 안전 점검에 소홀하였다.
  • 가스누출에 따른 자동경보 및 대응체제가 부족한 상태였기때문에 가스누출지점 파악이나 수작업에 의한 밸브차단 등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 공사를 진행했던 (주)표준개발은 가스관이 파손된 지 30분이나 지나서야 도시가스 측에 신고를 해서 피해를 더 키우게 되었다.
  • 신고를 받은 도시가스측 역시 30분이나 지나서 사고지점 인근의 맨홀을 뛰어다니며 4개소의 벨브를 손으로 조작하여 비로소 가스공급을 차단하였다.

피해[편집]

학교 등교 시간에 벌어진 사고로,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 사망자 101명 (영남중학교 재학생 42명 포함), 부상자 202명
  • 차량 152대 파손, 주택 60채 파손 등 건물 피해 346건 피해액만 540억

여파[편집]

사고처리를 위해 설치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대구백화점 상인점 공사를 맡은 (주)표준개발의 과실에 의한 사고임을 밝혀내고 회사 관계자 9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으며,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물론 굴삭기 운전수도 포함되었다.

이 사고로 지하 매설물에 대한 전산대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당국의 안전관리 행정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으며, 긴급 구난체계 및 통합 구조체계의 정비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책기구가 설립되고, 도시가스사업법 등 관계 법령의 개정을 가져왔다.

  • 원인 측면 : 특별안전점검단 상설운영, 지하매설물 ‘매핑시스템’ 조기 구성, 도로굴착 및 점유시 가스회사와 사전협의 의무화, 가스누출 탐지를 위한 가스검지기 휴대 의무화, 작업개시 전 가스누출 여부 확인 등
  • 수습 측면 : 현장지휘권 일원화, 구조장비 보강 및 전문인력 양성, 인근병원 응급처치 후 시내병원으로 분산 후송, 신속한 프레스센터 설치 및 체계적인 홍보대책 수립, 사고현장 상황의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로 피해자 신원파악 편의제공 등

학산공원 위령탑[편집]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학산공원 안에 위령탑이 있다.

2005년 4월 28일 마지막 추도식이 열렸다. 유족회가 10주기를 끝으로 추모행사를 열지 않기로 해 이날 추도식이 마지막 공식 추모행사가 됐다. 이날 추도식에는 유족과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랬다. [2]

주석 및 참고 자료[편집]

  1.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 가스폭발사고
  2. 박주희 기자. "대구 ‘가스폭발’ 악몽 10년 지나도 아찔", 《한겨레》, 2005년 4월 28일 작성. 2009년 5월 22일 확인.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