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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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우(韓賢宇, 1919년 ~ 2004년)은 대한민국의 우익단체 활동가로 송진우를 저격, 암살한 범죄자이다. 그 배후가 불명확하며, 현재에도 그를 사주한 암살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암살 당시 미군정청에서는 송진우 암살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하고, 1946년 1월 1일 다시 김구미군정청으로 소환하여 경고를 주었다.[1] 그 뒤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한국 전쟁 중 일시 귀국했으나 다시 망명하여 여생을 보냈다. 다른 이름은 홍건이다.

생애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것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를 중퇴하였다.

1945년 12월 30일 새벽 6시 15분에 6명의 행동대원을 이끌고 서울 원서동 송진우를 찾아가 암살했다.그들이 쏜 탄환 13발 중 6발이 명중하였다.[2] 범행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범인 중 한 사람인 한현우는 송진우가 미국의 후견을 지지한 것이 자신의 저격동기였으며, 배후는 없었으며 김구이승만이 자신들을 의거를 단행한 의사로 칭찬해 주었다고 주장했다.[3][4][5]

한현우 등이 재판시 진술에서 '송진우는 미국의 후견을 지지했다'는 주장은 12월 29일 밤 경교장 회의에서 송진우의 발언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강준만은 송진우의 발언은 존 하지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았다.[3] 후에 언론인 송건호는 한현우를 국수적 민족주의 광신자 라고 평가했다.[6]

그 뒤 일본으로 망명하여 생활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중에는 일시 귀국하여 부산에 체류하던 중 이것이 장택상 등에 의해 알려지면서 문제시 되자 다시 일본으로 출국하였다.

한편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는 한현우의 배후를 김구라고 보았다.[7] 1960년대에 이르러 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2004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송진우 저격

1945년 12월 30일 새벽 6시 15분에 6명의 행동대원을 이끌고 서울 원서동에 사는 송진우를 찾아가 암살했다.그들이 쏜 탄환 13발 중 6발이 명중하였다.[2] 범행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범인 중 한 사람인 한현우는 송진우가 미국의 후견을 지지한 것이 자신의 저격동기였으며, 배후는 없었으며 김구이승만이 자신들을 의거를 단행한 의사로 칭찬해 주었다고 주장했다.[3][8][9]

한현우 등이 재판시 진술에서 '송진우는 미국의 후견을 지지했다'는 주장은 12월 29일 밤 경교장 회의에서 송진우의 발언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강준만은 송진우의 발언은 존 하지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았다.[3] 후에 송건호는 한현우가 국수적 민족주의 광신자 라고 평가했다.[10]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는 암살 당시 자료를 들어 다른 증거는 한현우를 김구와 연결시켰고, 한현우의 배후를 김구라고 지목했다.[7]

그는 송진우신탁 통치에 찬성하는 것을 암살의 이유로 들었다.

"송진우가 '근대국가와 민주정치를 가져보지 못한 우리민족은 선진국의 지도를 받아야 하고, 신탁통치도 선진국의 지도를 받는 훈정의 의미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살해할 결심을 갖게 되었다.[11]", "민족 분열을 획책하는 지도자는 힘으로 숙청하는 것이 애국애족이며 승리라는 생각으로 암살에 착수하였다.[11]"

한현우는 곧 재판을 받고 수감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진술들이 나오면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종적을 감췄고, 그 뒤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김영삼문민정부 시절,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전병민을 임명했으나, 그가 송진우의 암살범 한현우의 사위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논란이 일었다. 전 수석은 사흘만에 수석직을 사퇴했고, 그로 인해 청와대 정책수석실은 폐쇄되었다. [12]

학력

상훈

가족 관계

  • 사위 : 전병민(1947년[14] - , 전 청와대 정책수석)

기타

일본 체류 중 반공 활동과 칼럼 등을 기고한 공로로 외무부 장관 표창(제2073호)을 받기도 했다.[13]

같이 보기

주석

  1. 백범어록(김구, 도진순 엮고 보탬, 돌베게, 2007.11)의 67페이지
  2.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151페이지
  3.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152~153페이지
  4. 브루스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287페이지
  5. 김학준 《고하 송진우 평전:민족민주주의 언론인․정치가의 생애》(김학준, 동아일보사, 1990) 357페이지
  6. 송건호 전집 7 - 한국민족주의의 탐구(송건호 저 한길사 2002) 5페이지
  7. 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87페이지
  8. 브루스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287페이지
  9. 김학준 《고하 송진우 평전:민족민주주의 언론인․정치가의 생애》(김학준, 동아일보사, 1990) 357페이지
  10. 송건호 전집 7 - 한국민족주의의 탐구(송건호 저 한길사 2002) 5페이지
  11. 고하 송진우 기념사업회
  12. 문민정부 5년 재조명 ①YS 개혁인사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동아일보 1998년 1월 1일자
  13. "전병민씨 경호실 요원 추측" 고하 암살범 한현우씨 증언(2), 한겨레신문 1993.02.24 12면, 정치면
  14. 문민정부 3일 수석’ 정치컨설턴트 전병민씨 한겨레 2006-02-26

참고 문헌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 송건호, 《송건호 전집 7 -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송건호 저 한길사 2002)
  • 브루스 커밍스, 《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1986)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 나영균,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 (황소자리, 2004)
  • 김구, 《백범어록》 (도진순 엮고 보탬, 돌베게, 2007)
  • 고하전기편찬위원회, 《고하송진우선생전》(고하선생전기편찬위원회, 동아일보출판국, 1964)
  • 박태균,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지성사, 1996)

외부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