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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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保坂祐二
출생 1956년 0월 0일(1955-11-30) (57세)
일본 일본 도쿄 도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적
일본 일본 국적(前)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직업 정치학 교수
소속 세종대학교 교수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종교
배우자 有 (한국인 여성)
자녀 슬하 2남 1녀

호사카 유지(일본어: 保坂 祐二 (ほさか ゆうじ), 1956년 ~ )는 1988년부터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한국인 정치학자이다. 2003년에 대한민국에 귀화했다.

현재 세종대학교 독도종합 연구소장 겸 일본학 전공 교수이며 근·현대 한·일관계,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의 전문가이다. 종교는 없다.

목차

약력 [편집]

  • 1956년 도쿄 도에서 태어났다.
  • 도쿄 대학교 공학부(東京大学校 工学部) 금속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한 내용을 접해 일본이 왜 대한민국을 침략했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대학교 졸업 후 대한민국에 유학했다.
  •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의 일본학 전공 교수로 임용되었다.
  • 석사 학위 논문 제목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조선개화파>,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조선,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이다.
  • 최종 학위는 정치학 박사이다.
  • 1986년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2남 1녀를 두었다.
  • 2003년 대한민국귀화했다. 그러나 이름은 일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학력 [편집]

주장 [편집]

  • 그는 조선, 만주, 대만에 대한 지배정책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 연구의 연장선상에 역사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그리고 독도영유권문제에 관한 현재의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일본 측을 비판할 뿐만이 아니라 언론, 저서 등을 통해 한국인이 고쳐야 할 점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어 일본문화 연구, 한국문화 연구 등을 병행하고 있다.
  •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가 손자병법의 사고방식을 그 기저에 갖고 있는 점에 주목, 일본의 침략성뿐만이 아니라 일본인의 철저한 사전준비정신과 연구정신 등을 손자병법을 통해 설명한다. 한편, 선비문화가 한국인의 정신적 토대라고 주장하여 선비문화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설명한다.
  • 일제시대 연구에서는 교육정책, 동화이념, 창씨개명, 잡거정책, 법적 동화정책 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일제가 그 지배지역에 대해 민도가 낮다는 이유를 내세워 30-50년 전에 일본에서 시행된 낡은 법제도를 시행해 항상 일본본토와의 차별성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독도 관련 [편집]

  •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 측이 자료를 많이 은폐,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여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입장이다.
  • 90년대 후반에 독도에 대한 한일간의 견해 차이를 크게 느껴 양국의 주장과 제시 자료들을 객관적인 입장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측 주장에는 왜곡과 자료은폐가 많다는 것을 간파, 이후 독도영유권문제에 있어 새로운 논리와 자료를 제시해 오고 있다.
  • 2005년 3월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일본 고지도, 독도가 한국땅으로 기재된 일본에서 제작된 조선지도 등을 다수 공개했다. 독도연구에 있어 자료발굴과 논리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2005년 4월,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자음과모음)를 출간하여 독도가 빠져 있는 일본 고지도를 다수 공개했다.
  • 2006년 10월, 19세기에 독도를 한국땅으로 표기한 일본의 고지도 2점을 공개했다. 1점은 1882년 제작된 『조선국전도』(朝鮮國全圖), 또 1점은 1883년에 제작된 『대일본전도』(大日本全圖). 같은 날, 울릉도독도박물관을 방문하고 이 2점의 지도를 기증했다.
  • 2006년, <하야시 시헤이도(林子平圖)와 독도>라는 논문으로 1785년에 일본의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작성한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에 그려진 동해 한가운데의 2섬 중 울릉도(죽도<竹嶋>라고 기재) 옆에 있는 작은 섬이 독도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문헌적으로 명백히 증명했다. 2섬은 한반도와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조선의 소유(朝鮮の持也)'라고 기재되어 있다.
  • 2008년 2월 22일, 일본 측에 소위 <다케시마의 날>행사에 맞춰 1894년에 일본에서 작성된 고지도 2점을 공개했다. 2점 모두 독도가 한반도와 같은 색깔로 채색되어 있고 일본열도와는 명백히 구별되어 있다. 2점은 『신찬조선국전도』(新撰朝鮮國全圖)와 『일청한 조선변란상세지도(日淸韓 朝鮮變亂詳細地圖)』이다. 『신찬조선국전도』는 1882년에 스즈키 케이사쿠(鈴木敬作)에 의해 제작된 『조선국전도』에 색칠만을 가한 지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외무성관리이자 독도연구가 가와카미 켄조(川上健三)는 1966년에 출판한 저서 속에서 당시의 도명(島名)혼란을 정리하면서 전술한 『조선국전도』에 나타난 다케시마(竹島)와 마쓰시마(松島)는 옛날 그대로 명칭을 사용한 지도이어서 그 2섬은 바로 울릉도와 독도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그 지도에 색칠만 가한 『신찬조선국전도』의 2섬도 울릉도와 독도이며 조선령으로 채색되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 2008년 5월, 1854년에 일본이 미국과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을 때 독도가 조선땅이라 기재된 전술한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접양지도>(1785)를 공식적으로 사용해 미국 측을 이겨낸 역사적 사실을 공표해, 하야시의 지도가 일본의 공식지도로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 사실에 대해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최종보고서에서는 <하야시 시헤이의 지도는 영유권을 나타내는 자료가 아니다>라고 기술되어 있는 점을 들어 일본 측의 연구는 엉터리임을 지적했다.
  • 기타 독도연구 전반에 걸쳐 새로운 자료와 논리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기타 [편집]

  • 부친이 경영한 렌즈 회사 거래처에는 재일 한국인이나 일본으로 귀화한국인이 많았다. 그들과 접촉하면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매료되었다. 부친이 렌즈의 연구로 알게 된 서울대 교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그 분은 일본 사람 중에는 없는 정도의 훌륭한 인격자다>라고 말을 한 것을 듣고 어린 시절에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 역도산, 최배달, 장훈, 가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 통산 400승을 달성한 일본프로야구의 전설적 대투수) 등, 유명 스포츠인들이나 유명연예인들이 재일 한국인/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한국인의 우수성을 어렸을 때부터 느껴왔다.
  • 개인적으로 역도산<고인>의 제자들이나 역도산의 부인과 친교가 있다고 한다.
  • 세종대학교에 <역사와 한국의 영토>라는 과목을 개설해 1학기 간 독도문제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타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독도문제나 한일관계에 대해 의견을 듣고 간다고 한다.
  • 한일관계, 한일문화의 차이, 독도문제 등에 대한 강연의뢰나 기고청탁 등을 많이 받는 편이라고 한다.

저서 [편집]

일본에서 출판된 책은 역서가 2점 있고 저서는 대한민국에서만 판매된다.

  •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2002, 답계)
  •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조선,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2002, J&C)
  •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2005,자음과모음)
  • 일본역사를 움직인 여인들(2005, 문학수첩)
  • 독도/다케시마 한국의 논리(역서, 2005, 일본 론소샤<論創社>)
  • 조선전쟁(역서, 2007, 론소샤<論創社>)
  • 조선선비와 일본 사무라이(2007, 김영사)
  • 독도=다케시마 논쟁(역서, 2008, 보고사)
  • 일본우익사상의 기저연구(공저, 2007, 보고사)
  • 현대한국의 정치와 사회(공저, 2005, 매봉)

주석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