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랜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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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피터 랜토스
Thomas Peter Lantos

출생 1928년 2월 1일(1928-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망 2008년 2월 11일 (80세)
미국 베데스다
학력 워싱턴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직업 대학 교수, 국제 문제 분석가, 경영 컨설턴트
정당 민주당
종교 유대교
배우자 아넷 랜토스

토머스 피터 랜토스(영어: Thomas Peter Lantos, 1928년 2월 1일 ~ 2008년 2월 11일)는 미국의 정치인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런토시 터마시 페테르(헝가리어: Lantos Tamás Péter)이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므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나치의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였다.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시애틀워싱턴 대학교버클리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대학교수, 국제정치 고문 등으로 활동하다 1980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 캘리포니아 주샌프란시스코 남부 교외의 선거구에 출마, 당선되었다. 1981년부터 2008년 사망할 때까지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외교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미국 의회에서 유일한 홀로코스트 체험자였던 그는, 인권 상황에 특히 관심이 많았으며, 북한 인권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업적을 남겼다.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하여 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북한 인권법을 발의하였다. 2007년 하원 외교위원장 자리에 올랐고, 이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1], 결국 하원 본회의에서 위안부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 외에도 이라크 전쟁, 다르푸르 분쟁 등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중 식도암 진단을 받아 2008년 초, 2008년 11월 치러지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2008년 2월 11일 80세로 사망하였다[2].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준 그에게 수교훈장 광화장을 추서하였다[3].

주석[편집]

  1. 美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경향신문 2007년 6월 27일
  2. 美의회내 지한파,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 사망 2008년 2월 12일
  3. 故 랜토스 위원장에 광화장 전수 매일경제 2008년 9월 16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