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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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502~549)의 주흥사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로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되어 있다. 동진 왕희지의 필적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았다고 하는데, 더 오래전에 중국 위나라 종요의 필적을 모은 것이라는 설도 있고 천자문을 종요가 손수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해서 '언재호야(焉哉乎也)'의 어조사로 끝나는데, 자연 현상부터 인륜 도덕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글귀를 수록하여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당나라부터 빠르게 보급되어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왕희지의 7대손 왕지영이 진서와 초서의 두 서체로 만든 《진초천자본(眞草千字本)》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이 남아 있으며 둔황에서 발견된 문서에 그 필사본이 많다고 한다. 송나라부터는 완전히 정착되어 《속(續)천자문》을 만들기도 하고 《서고천자문(敍古千字文)》과 같이 전혀 다른 글자를 이용한 새로운 천자문이 생기기도 했으며, 천자문의 순서를 이용해 문서 번호를 붙이는 풍습도 생겼다. (일자오결)

전설에는 주흥사가 무제의 명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야 했으나 마지막 4자를 짓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는데, 홀연히 귀신이 나타나서 어조사 언재호야의 마무리를 알려주었으며, 완성한 후에 보니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천자문은 모든 한자가 없어서 팬그램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한자 교육 장면이 나오면 꼭 천자문을 읽게 하고 읽지 못하면 체벌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편집]

《천자문》이 한국에 전래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일설에는 일본의 사서 《일본서기》에는 285년 백제왕인(王仁)이 《논어》 10권과 함께 《천자문》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백제에는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천자문의 성립 이전이므로 단순한 전설이라는 것, 일부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것, 혹은 또다른 천자문이라고 하는 것 등의 논란이 있다.

한편, 신라에는 법흥왕 8년(521년)에 중국 남조 양의 승려 원표가 사신으로 오면서 많은 불경과 《천자문》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천자문은 한문의 입문서로써 줄곧 중용되어 여러가지 판본이 존재했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자마다 그 새김과 소리를 넣어 석음(釋音)을 붙여 간행되었는데, 그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선조 8년(1575년)에 광주에서 간행된 광주판 천자문이며, 현재 일본 동경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에 가장 널리 보급된 것은 조선 선조 16년(1583년) 어명에 의해 명필 한호가 쓴 《석봉천자문(石峯千字文)》으로 여러차례 중간되어 왔는데, 현존하는 여러 판본중에서 경북 영주의 박찬성(朴贊成) 소장본과 일본 나이카쿠 문고(內閣文庫) 소장본이 원간본 혹은 이것에 가까운 판본으로 추정된다.

종요의 천자문[편집]

주흥사뿐만 아니라 중국 위나라 종요(鍾繇)도 《천자문》을 남겼다. 주흥사의 책은 “天地玄黃”으로 시작하나, 종요의 책은 “二儀日月”로 시작한다.

원문[편집]

天地玄黃 宇宙洪荒 日月盈昃 辰宿列張 寒來暑往 秋收冬藏 閏餘成歲 律呂調陽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한래서왕 추수동장 윤여성세 율려조양

雲騰致雨 露結爲霜 金生麗水 玉出崑岡 劍號巨闕 珠稱夜光 果珍李柰 菜重芥薑
운등치우 노결위상 금생여수[1][2] 옥출곤강 검호거궐 주칭야광 과진이내 채중개강

海鹹河淡 鱗潛羽翔 龍師火帝 鳥官人皇 始制文字 乃服衣裳 推位讓國 有虞陶唐
해함하담 인잠우상 용사화제 조관인황 시제문자 내복의상 추위양국 유우도당

弔民伐罪 周發殷湯 坐朝問道 垂拱平章 愛育黎首 臣伏戎羌 遐邇壹體 率賓歸王
조민벌죄 주발은탕 좌조문도 수공평장 애육여수 신복융강 하이일체 솔빈귀왕

鳴鳳在樹 白駒食場 化被草木 賴及萬方 蓋此身髮 四大五常 恭惟鞠養 豈敢毁傷
명봉재수 백구식장 화피초목 뇌급만방 개차신발 사대오상 공유국양 기감훼상

女慕貞烈 男效才良 知過必改 得能莫忘 罔談彼短 靡恃己長 信使可覆 器欲難量
여모정열 남효재량 지과필개 득능막망 망담피단 미시기장 신사가복 기욕난량

墨悲絲染 詩讚羔羊 景行維賢 克念作聖 德建名立 形端表正 空谷傳聲 虛堂習聽
묵비사염 시찬고양 경행유현 극념작성 덕건명립 형단표정 공곡전성 허당습청

禍因惡積 福緣善慶 尺璧非寶 寸陰是競 資父事君 曰嚴與敬 孝當竭力 忠則盡命
화인악적 복연선경 척벽비보 촌음시경 자부사군 왈엄여경 효당갈력 충즉진명

臨深履薄 夙興溫凊 似蘭斯馨 如松之盛 川流不息 淵澄取暎 容止若思 言辭安定
임심리박 숙흥온청 사난사형 여송지성 천류불식 연징취영 용지약사 언사안정

篤初誠美 愼終宜令 榮業所基 籍甚無竟 學優登仕 攝職從政 存以甘棠 去而益詠
독초성미 신종의령 영업소기 적심무경 학우등사 섭직종정 존이감당 거이익영

樂殊貴賤 禮別尊卑 上和下睦 夫唱婦隨 外受傅訓 入奉母儀 諸姑伯叔 猶子比兒
악수귀천 예별존비 상화하목 부창부수 외수부훈 입봉모의 제고백숙 유자비아

孔懷兄弟 同氣連枝 交友投分 切磨箴規 仁慈隱惻 造次弗離 節義廉退 顚沛匪虧
공회형제 동기연지 교우투분 절마잠규 인자은측 조차불리 절의염퇴 전패비휴

性靜情逸 心動神疲 守眞志滿 逐物意移 堅持雅操 好爵自縻 都邑華夏 東西二京
성정정일 심동신피 수진지만 축물의이 견지아조 호작자미 도읍화하 동서이경

背邙面洛 浮渭據涇 宮殿盤鬱 樓觀飛驚 圖寫禽獸 畵綵仙靈 丙舍傍啓 甲帳對楹
배망면낙 부위거경 궁전반울 누관비경 도사금수 화채선령 병사방계 갑장대영

肆筵設席 鼓瑟吹笙 陞階納陛 弁轉疑星 右通廣內 左達承明 旣集墳典 亦聚群英
사연설석 고슬취생 승계납폐 변전의성 우통광내 좌달승명 기집분전 역취군영

杜藁鍾隸 漆書壁經 府羅將相 路俠槐卿 戶封八縣 家給千兵 高冠陪輦 驅轂振纓
두고종례 칠서벽경 부라장상 노협괴경 호봉팔현 가급천병 고관배련 구곡진영

世祿侈富 車駕肥輕 策功茂實 勒碑刻銘 磻溪伊尹 佐時阿衡 奄宅曲阜 微旦孰營
세록치부 거가비경 책공무실 늑비각명 반계이윤 좌시아형 엄택곡부 미단숙영

桓公匡合 濟弱扶傾 綺回漢惠 說感武丁 俊乂密勿 多士寔寧 晋楚更覇 趙魏困橫
환공광합 제약부경 기회한혜 열감무정 준예밀물 다사식녕 진초갱패 조위곤횡

假途滅虢 踐土會盟 何遵約法 韓弊煩刑 起翦頗牧 用軍最精 宣威沙漠 馳譽丹靑
가도멸괵 천토회맹 하준약법 한폐번형 기전파목 용군최정 선위사막 치예단청

九州禹跡 百郡秦幷 嶽宗恒岱 禪主云亭 雁門紫塞 鷄田赤城 昆池碣石 鉅野洞庭
구주우적 백군진병 악종항대 선주운정 안문자새 계전적성 곤지갈석 거야동정

曠遠綿邈 巖峀杳冥 治本於農 務玆稼穡 俶載南畝 我藝黍稷 稅熟貢新 勸賞黜陟
광원면막 암수묘명 치본어농 무자가색 숙재남묘 아예서직 세숙공신 권상출척

孟軻敦素 史魚秉直 庶幾中庸 勞謙謹勅 聆音察理 鑑貌辨色 貽厥嘉猷 勉其祗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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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古尋論 散慮逍遙 欣奏累遣 慼謝歡招 渠荷的歷 園莽抽條 枇杷晩翠 梧桐早凋
구고심론 산려소요 흔주누견 척사환초 거하적력 원망추조 비파만취 오동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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謂語助者 焉哉乎也
위어조자 언재호야

관련 문화재[편집]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시가 아닌, 중국 윈난 성의 강 이름이다.
  2. 원칙적으로는 금생려수라고 써야 하지만,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금생여수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