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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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르(아랍어: عمر بن الخطاب, Umar ibn al-Khattāb, 586년 ~ 644년 11월 3일)은 이슬람교의 제2대 정통 칼리파이다(재위 634년 ~ 644년). 오마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무함마드를 박해하였지만, 후에 이슬람교로 바꾸었다. 그는 제1대 칼리프의 정복 사업을 이어받아, 비잔티움 제국로부터 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를 빼앗았으며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합쳐 이슬람 제국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는 《꾸란》을 처음으로 편집하였으며, 622년 헤지라의 해를 이슬람 기원 원년으로 정하였다.

우마르 협정[편집]

우마르 협정(Pact of Umar)은 637년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시 평화적으로 조약을 체결한 것으로서 우마르 1세가 직접 기독교인들과 체결한 것이다. 조약 체결 몇 년 전부터 칼리파가 직접 지역을 방문해 예루살렘을 찾곤 했었다. 기독교인과 아랍인 자료 모두에서 우마르가 차분히 들어왔으며 낙타를 타고 하인들과 앉아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우마르 협정을 체결한 이후에도 계약 상 그리스정교 건물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것 위에 자비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알라가 보내신 자, 모든 신봉자들의 수장인 나 우마르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협정을 체결하는 바이다. 그들의 돈과 교회, 아이들을 보호할 것이며 사람들의 몫을 지킬 것이다.

그들의 교당을 부수지 아니할 것이며 파괴나 손상도 입히지 않을 것이다. 딤미의 돈과 십자가는 취할 수 없으며 강제 개종도 이뤄질 수 없다. 누구도 다쳐서는 안된다.

어떤 유대인도 일리야에서 살 수 없으며 지즈야라는 인두세를 내야 한다. 로마인들은 모두 없애야 하며 돈도 취할 수 없다. 로마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무역상품과 아이들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이곳에 기록된 모든 것은 알라의 명으로 이뤄진 것이며 그의 천사의 이름으로 징수하는 것으로 지즈야는 우리가 이들로부터 취해야 할 것이다.

이 곳에 함께 있던 목격자들은 칼리드 이븐 알왈리드, 아마르 이븐 알아스, 압둘 라만 빈 아프, 무아위야 1세이다. 헤지라 이후에 발효될 것이다.

이후 우마르는 주교에게 오래된 유대 사당으로 자신을 데려가라 했는데 모든 곳이 쓰레기로 넘쳐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로마인들이 이 곳을 쓰레기장으로 썼기 때문인데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우마르가 직접 그것을 청소했다고 한다. 칼리파가 직접 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행동을 모든 백성들이 따라 했다. 후에 목재 모스크가 그 자리 남쪽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곳을 지나 한 랍비를 따라 바위의 돔 인근으로 갔는데 바위가 장막으로 막아져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바위의 돔이 아니라 초석(Foundation Stone)이었으며 후에 우미야드 칼리파인 칼리프가 바위의 돔을 지은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우마르는 도시의 다른 종교인에게 예를 갖추려 노력했으며 유대인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종교를 유지할 수 있었다. 70가구의 유대인이 살았다고 하는데 지역 기독교인도 샤리아 내 허용되는 범위에서 종교를 유지하고 지낼 수 있었다.

정복자로서 우마르는 행정 개혁을 감독했으며 행정 정책을 점거했다. 새로 정복한 곳에는 찾아가 새로운 장관과 관료를 임명했으며 모든 무슬림 영역의 통계 자료를 만들도록 했다. 그의 통치 내 바스라와 쿠파 일대가 발견 및 정비됐다. 638년 메디나의 대 모스크와 메카의 모스크를 수리, 정비했다. 그는 샤리아를 법문화하기 시작하면서 나즈란과 카이바르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추방했으며 3일 이상 히자즈에서 머물지 못하게 했다.[1]

우마르 협정은 딤미와 무슬림 간, 아랍 세계의 계층 간 관계를 정리했으며 후대에 널리 인용됐다.

영토 확장[편집]

우마르 재임기 동안 이슬람 군대는 처음으로 방어에서 벗어나 정복전쟁에 나서 636년 거대한 비잔틴 제국과 벌인 야무크 전쟁에서 승리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637년에는 사산조 페르시아마저 격파시켰다. 642년 사산조 페르시아을 모두 점령해 멸망시켜 이슬람 국가로 만들고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정복해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했다.

최후[편집]

그러나 그에게는 자연히 적도 많이 생겼으며 예루살렘을 정복당한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페르시아인들의 반감을 샀고 결국 644년 기독교도 페르시아계 노예에게 암살당했다.

주석[편집]

  1. G. Levi DellaVida and M. Bonner, Encyclopedia of Islam, and Madelung, The Succession to Prophet Muhammad, p. 74
전 임
아부 바크르
칼리파
634년 ~ 644년
후 임
우스만 이븐 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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