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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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태조(遼太祖, 872년 - 926년, 재위 : 907년 - 926년)는 요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이름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磯, 옐뤼아바오지, Yelü Abaoji). 시호는 대성대명신열천황제(大聖大明神烈天皇帝)이다.

거란 문자는 920년 요 태조 야율아보기가 직접 창제 작업에 착수하여 같은 해 9월에 완성, 공포하였다고 한다.

목차

[편집] 생애

그는 872년 태어났으며 불안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조부는 종족간의 갈등으로 피살되었고,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달아났다. 야율아보기는 그의 할머니가 숨겨 키웠다.

야올리안 족은 750년대에서부터 거란족을 이끄는 부족이었다. 그들은 당나라와 좋은 관계를 지녔으나 9세기말까지는 일라족의 지도자가 야올리안 칸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보기의 부친 야율적노는 일라족의 부족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성은 중국문화의 표시를 보였고 그들은 야올리안 부족외의 거란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아보기는 901년903년 일라족의 부족장이 되었다. 전거란 군 사령관인 유웨라 불렸다. 이것은 그가 거란의 2인자임을 의미한다.

그는 당나라의 쇠퇴(조광윤이 송나라를 건설할 시기)를 계기로 요태조인 아율아보기는 거란족을 통합하여 요나라를 세웠다. 907년 그는 거란의 대가한(요태조)이 되었다. 그는 중국 북부에서 7개 부족장의 지지를 받았고, 야올리안 대가한의 승인을 받었다.

그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어 한자를 본따 거란 문자를 창제하였고, 농업을 발달시켰으며, 그 동안 단임제인 황제를 종신제로 하여, 요나라 황실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먼저 동돌궐과 몽골족을 정벌하기 위해 서방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서방 정책이 마무리가 되었을 때인 925년 12월에 당시 쇠퇴하고 있었던 발해를 정복하는 사업을 계획하여, 926년 1월에 발해를 멸망시켰다.(하지만 발해가 멸망된 이후에도 정안국 등 발해의 계승국들이 생겨났다.)

아보기는 발해를 멸망시키고, 거란으로 돌아갔을 때 사망하였다. 요나라 태조가 죽자 그의 부인 술율평(述律平, 요사(遼史)에서는 소 황후로 기록됨)이 잠시 나라를 다스리다가 자신의 둘째아들인 요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편집] 가족 관계

[편집] 부인

[편집] 아들

앞선 왕
야율적노
제 1 대
907년 - 926년
다음 왕
 야율덕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