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Jaeyoooon/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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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개인 정보
출생일 1998년 3월 1일(1998-03-01)(26세)
출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일산
168cm
포지션 오른쪽 윙백
구단 정보
현 소속팀 은퇴
등번호 11
청소년 구단 기록
2011-2013
2014-2016
틀:오마중학교
틀:민족사관고등학교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2017-2038
2017
2018-19
첼시
FC 서울 (임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임대)
7240(86)
00260(15)
00330(11)
국가대표팀 기록
2019-2034
2020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001430(24)
0110(4)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35년 5월 18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34년 6월 29일 기준임.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남자 축구
올림픽
2020 도쿄

김재현(1998년 3월 1일, 경기도 고양시)은 현 고양시 일산동구의 국회의원이자, 전설적인 축구 선수였다. 포지션은 윙백이였다. 김재현이 축구계에 남긴 족적은 대단하다. 수비수임에도 탁월한 득점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제2의 공격수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김재현의 경기 스타일 덕에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김재현은 2026년 FIFA가 선정하는 발롱도르, 즉 올해의 선수상에 수비수로서는 20년만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를 비롯해 2023년부터 2026년까지 FIFA 선정 올해의 팀에 4년 연속 선정된 것을 포함, 자신의 이름을 올해의 팀에 8번 올렸고, 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최우수 선수상 1회, FIFA 월드컵 실버볼 수상 1회를 한 바 있다.

김재현은 평소에 국가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한국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202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고 필드에 누워서 한동안 울던 모습과, 은메달을 걸어주자 곧바로 벗고 멈추지 않은 눈물을 닦는 데에 쓰는 장면은 전 세계 축구계를 감동시킨 장면이었다.

김재현은 페어플레이의 대가로 축구 선수로서는 한 장의 옐로카드만을 받았다.

축구 선수로서 은퇴한 뒤 감독이 아닌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고 밝힌 뒤 4년 뒤 열린 총선에서 자신의 고향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현재는 초선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클럽 경력[편집]

유소년 경력[편집]

김재현은 유소년을 프로 축구단 산하 유스팀에서 보내지 않았다.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가던 김재현은 우수한 학업 능력으로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민족사관고 축구부에서 주전 오른쪽 수비수를 보다가 어느 날 잉글랜드의 한 스카우트가 그의 플레이를 보고 감동받았고, 무리뉴 감독이 고민 끝에 2017년 겨울 이적시장에 그를 과감히 영입 결정한다.

첼시 FC[편집]

김재현은 입단 직후 바로 FC 서울로 임대 되었다.

FC 서울 임대[편집]

임대 생활은 순탄치 않았으나, 곧 적응하면서 성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은 오스마르의 공백 속에 오른쪽 수비수를 찾고 있었는데, 김재현의 활약 속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임대[편집]

서울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많은 유럽 팀들이 김재현의 가능성을 확인했는데, 그 중 영입 경쟁에서 앞선 것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도르트문트는 2018년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김재현을 1시즌 반동안 임대하고 2000만 파운드의 완전 이적 조항을 삽입했다. 초반에는 어린 나이에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힘든 생활을 해야 했지만, 이내 주전을 꿰차며 활약했다. 이 기간 도르트문트는 7시즌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도르트문트는 완전 이적 조항을 통해 김재현을 완전 영입하려 했지만, 성골 첼애우였던 김재현은 도르트문트행을 거절하고 첼시 합류를 결정한다.

첼시에서의 첫 다섯 시즌[편집]

김재현은 첼시에서 초기에 이바노비치의 서브 선수로 주로 이름을 올렸으나, 이바노비치가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면서 2021년부터 주전 멤버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는 첫 다섯 시즌을 잔부상 없이 깔끔히 치러냈고, 이 기간 PFA 영플레이어 상을 2차례나 수상하는 등 오른쪽 수비수로서는 월드클래스의 잠재력을 가진 선수로 점점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전성기[편집]

김재현은 2024-25 시즌부터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다. 2024-25시즌부터 6시즌간 김재현은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첼시를 위해 전 경기를 출전한다. 김재현의 전성기와 함께 첼시도 클럽 역사상 최고의 시간을 맞게 되는데, 김재현의 전성기로 평가되는 6시즌동안 첼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37년만에 2연패 팀이 된 것을 포함, 2025-26, 2026-27, 2029-30시즌에 우승을 차지한다. 자신을 영입한 무리뉴 감독 역시 감독 생활 막바지에 김재현이라는 선수를 만나 내가 이렇게 행복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면서 그의 기량을 높이 샀다. 특히, 김재현은 2029-30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자신의 옛 소속팀이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후반 42분 프리킥 결승골을 터트리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첼시 주장 8년, 그리고 은퇴[편집]

김재현은 2029-30 시즌 종료 직후 티보 쿠르트와로부터 주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아시아인 선수가 공식적으로 팀의 주장으로 선정된 것은 그가 최초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무리뉴 감독이 지병으로 사임하면서 첼시 역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첼시는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간 7번 우승했는데, 2030-31시즌에는 4위로 밀려나면서 20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 순위권에 드는 데에 실패하게 된다. 동시에 김재현의 이적설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등이 5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시했다. 그러나 김재현은 이를 모두 거절하고 첼시 잔류를 결정했다. 주장으로서의 8년간은 첼시 리빌딩 기간으로, 첼시 클럽 역사에서 찬란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주장으로서 그가 없었다면 리빌딩에 실패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김재현은 2037-38시즌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홈 팬들의 축하 속에 20시즌동안 정들었던 첼시를 떠나 은퇴하기로 결정한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김재현은 국가대표로 총 143경기를 뛰었다. 2020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의 핵심 멤버였던 그는 올림픽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2026년 FIFA 월드컵에서 결승전 동점골을 넣고도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수상[편집]

대한민국 FC 서울
독일 도르트문트
잉글랜드 첼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