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환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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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환(1930년 7월 20일 ~ )은 대한민국비전향 장기수이다.

[편집] 생애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현재: 성남시 또는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가난한 묘지기 가정에서 출생했다. 1950년한국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신발을 사서 신어본 기억이 단 한 번 뿐일 정도로 빈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학교는 고학을 하면서 겨우 다닐 수 있었다.

한국 전쟁 발발로 조선인민군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였다. 처음에는 군당의 선전부원으로 일하다가 인민군이 후퇴하게 되자 인민군에 입대하고 월북하였다.

1956년에는 인민군에서 제대하고 평양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하였다. 김책공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성 소속의 영화촬영소 기술부장으로 배치받아 영화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1960년대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었고, 전향하지 않아 비전향 장기수가 되었다. 김은환은 재판 과정에서 간첩 혐의를 부인하고 통일 운동을 위해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 수감 기간은 1969년부터 1999년까지 약 30년이다.

1999년 2월에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1] 김은환의 가족들은 1950년에 좌익 가족이라 하여 모두 살해되어 출감 후에도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경기도 과천시에서 다른 출소 장기수들과 함께 헌책방을 운영하였다.[2]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고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미술가동맹 소속의 서예가로 활동하였다.[3]

[편집] 참고자료

  • 김만수 외 12인 (2003년). 〈신념과 의지의 강자를 키운 품 (김은환)〉,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 비전향 장기수들의 수기 4》. 평양: 평양출판사

[편집] 주석

  1. 정경렬. “[장기수 8명] 30-40년 만에 본 세상…`만남의집'에 거처”, 《조선일보》, 1999년 2월 25일 작성. 2008년 9월 15일 확인.
  2. 조성곤 (1999년 5월 20일). 장기수에서 생활인으로. 《한겨레21》 (제258호).
  3. 함보현. “북송된 ‘비전향장기수’들… 어떻게 살고있을까”,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6년 9월 1일 작성. 2008년 9월 15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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