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1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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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1934년 10월 27일 ~ )은 대한민국비전향 장기수이다.

[편집] 생애

경성부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1]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살고 있었다. 이때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으나,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나이를 올린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며 참전하였다.

1953년에는 조선로동당에도 입당하였고, 평양에서 학교를 마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석탄공업성에서 에너지 분야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결혼하여 가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공작원으로 남파[2]되었으며,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전주교도소 등에서 복역하였다.

수감 기간 중에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전향하지 않았고, 1999년에 출소하였다. 총 수감 기간은 약 31년이다. 출소 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고령자로 건강이 좋지않은 김종호를 돌보면서 생활하였다.[3]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한 뒤 음악가로 활동하며 〈행복 속에 기쁨 속에〉, 〈내 사랑, 내 삶의 노래〉 등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4] 2008년 4월에 《로동신문》에 〈태양의 노래는 영원합니다〉라는 수기를 발표하는 등 김정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편집] 주석

  1. “김정일총비서 비전향장기수 김창원에게 생일 70돐상”, 《조선중앙통신》, 2004년 10월 28일 작성.
  2. 풀려나는 미전향 장기수들”, 《문화일보 (연합뉴스 인용)》, 1999년 2월 22일 작성. 2008년 8월 6일 확인.
  3. 권오헌. “다시는 뵈올 수 없게된 그 인자하신 모습”, 《통일뉴스》, 2003년 11월 25일 작성. 2008년 9월 6일 확인.
  4. 신유리. “북송 비전향장기수 '특별' 대우”, 《동아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7년 6월 18일 작성. 2008년 9월 6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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