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진 (1930년)
김익진(1930년 7월 13일 ~ 2008년 7월 8일[1])은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일진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편집] 생애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으로, 미군정 시기부터 좌익 활동에 뛰어들었다.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여 박종근의 부대에서 태백산을 무대로 활동했다. 이때의 모범적인 활동으로 전쟁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으로 불리던 만경대혁명학원에는 김일성의 장남인 김정일이 편입하여 다녔다. 이 학교는 김정숙이 살아있을 때 특별히 후원에 신경을 쓴 학교이며, 김일성의 조부모가 생존해 있던 만경대의 김일성 생가와도 가까웠다. 김익진은 이 학교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으며 김일성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다짐하였다.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남파되었다가 1969년 6월에 강원도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육군보안사령부에서 조사를 받고 수감되었다. 수감되어 있던 중 대한민국에 생존해 있던 가족들로부터 전향을 권유 받고 강제 전향 시도도 있었으나, 전향하지 않았다.
1999년 2월에 대전교도소에서 석방[2]될 때까지의 총 수감 기간은 약 30년이다. 출감한 뒤 한국 전쟁 중 전사한 박종근의 부인에게 박종근이 부인과 가족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어, 부인이 자서전을 쓰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3] 김익진은 조선로동당 경북도당 위원장이었던 박종근의 연락병이었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고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익진의 삶을 소재로 장편소설 《의리》와 영화 《철쇄로 묶지 못한다》를 창작했다. 2008년에 지병으로 사망하고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편집] 참고자료
- 안영기 외 13인 (2003년). 〈만경대혁명정신으로 싸워 이겼다 (김일진)〉,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 비전향 장기수들의 수기 3》. 평양: 평양출판사
[편집] 주석
- ↑ “북송 비전향장기수 김일진 사망”, 《조선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8년 7월 9일 작성. 2008년 9월 13일 확인.
- ↑ 정경렬. “[장기수 8명] 30-40년 만에 본 세상…`만남의집'에 거처”, 《조선일보》, 1999년 2월 25일 작성. 2008년 9월 13일 확인.
- ↑ 안현상 (2007년 10월 1일). 빨치산 사령관과 무명옷 입은 선생님의 ‘50년 사랑’ - 남로당 경북도당위원장 박종근과 그의 아내 이숙의. 《민족21》 (제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