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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의 남원(南原)은 일제에 의해 [[운봉군]]과 통합되기 전의 [[남원군]]의 영역인 [[남원시]]서부 지역과 인근 [[임실군]], [[장수군]]일부지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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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8일 (화) 23:29 판
역사상의 남원(南原)은 일제에 의해 운봉군과 통합되기 전의 남원군의 영역인 남원시서부 지역과 인근 임실군, 장수군일부지역이다.
유래
가야의 기문(己文)지방의 일부인 하기물(下奇物), 백제의 고룡군(古龍郡)이다. 기물과 고룡이라는 이름은 서로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용(龍)의 순 우리말이 "미르"이므로 둘 다 "고밀Komir"로 개련되기 때문이다.[1] 기문지방은 우륵의 12곡에 나오는 남원시내의 하기물과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의 옛 모산현,또는 장수군 번암면이나 임실군 청웅면으로 여겨지는 거사물현에 있던 상기물지역으로 후기 가야세력이 호남 서부지역까지 진출했음을 시사한다. 남원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에 남원소경의 설치 이후이다.
역사
- 5세기 이후 대가야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하기물이 되었다.
- 웅진도독부에 의해 지심주(支심(수변尋)州) 기문현(己汶縣)또는 대방주(帶方州)에 속하였다.
신라귀족 옥보고가 이곳에서 고구려의 칠현금을 전수받아 이를 개량해 거문고를 만들었다.
- 1457년 남원진영이 설치되어 인근6현(곡성·옥과·구례·창평·장수·운봉)을 관할하였다.
- 1654년 전라좌영이 설치되었다.
본래의 남원부는 군(郡)이 되었고 남원군을 포함해 16군을 관할하였다.
- 1906년 지사면·둔남면 등이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0년 관할의 48방(坊)을 22개 면으로 통폐합하였다.
- 1911년 일부지역이 순창군에 편입되었다.
- 1931년 지금의 남원시내가 남원읍 으로 승격되었다.
- 1981년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 분리되었다.
같이 보기
주석
- ↑ 국사편찬위원회 편집부(1970)한국사 7 (삼국의 정치와 사회3 신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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