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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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물현(居斯勿縣)은 백제시대의 임실군(任實郡)의 영현(領縣)으로 지금의 임실군 지사면(只沙面) 오수면(獒樹面) 장수군 산서면(山西面) 있던 지역이다.

유래및 위치[편집]

백제(百濟)의 거사물현(居斯勿縣)은 임실군에 속한 영현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청웅현(靑雄縣), 고려시대에 거령현(居寧縣)이라 하였다. 현재 일반적으로 청웅이라는 이름 탓에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청웅면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의 청웅면은 정작 당대에 돌평현(堗坪縣) 이 있었던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남원부 동북 50리에 있었다고 하고 대동여지도 등을 검토하면 거사물현, 거령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일대이다.[1] 실제로 현재 청웅면 홈페이지에서는 청웅면이 옛 돌평현이라고 밝히고 있고[2] 오수견(獒樹犬)의 유래인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居寧人)이고, 고려 충선왕(忠宣王)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거)령천이씨(寧川李氏) 시조인 이능간(李凌幹)도 거령인이었고, 지금도 임실군의 지사면에는 거령천(居寧川:오수천) 흐르고 있다. 장수군에서는 번암면 옆의 산서면의 홈페이지에서 그 일대를 옛 거사물현이라 하고 있다.[3] 거사물현의 위치에 대해서는 더 연구및 검토가 필요하다. 장수군 남부 번암면과 산서면을 중심으로 남원시 북서부 덕과,보절,사매 3개면과 임실군 동부 오수,삼계,지사 3개면 일대에 걸쳐 있던 지방으로 여겨진다.[4]

역사[편집]

  •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다가 대가야가 진출해 상기물(上奇勿)을 세웠다. 상기물은 가야의 기문(己汶)지방의 일부로 신라의 모산현이 있던 운봉읍일대라고도 한다.
  • 무령왕대에 백제에 편입되어 거사물현을 설치하였다.
  • 백제의 패망이후 향후 3년간 이지역에 있던 거물성(居勿城)에서 백제유민들이 항전하였다가 신라장군 김흠순에 의해 평정되었다.
  • 757년 경덕왕 16년에 행정제도 개편으로 청웅현(靑雄縣)으로 개칭된 후 임실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의 지방군인 10정중에 하나인 거사물정(居斯勿停)이 주류(駐留)했다.

  • 고려시대에 거령현(居寧縣)으로 개명하고 전주목에 속한 뒤 강남도 관할에 들어갔다.
  • 조선시대1409년 태종 9년 전국의 속군, 속현을 소속군에 직촌화 함에 따라 남원부 관할의 직촌으로 편입되었다.
    • 지금의 장수군 번암면(蟠岩面)- 남원부48방중 하나인 상번암방, 중번암방, 하번암방
    • 지금의 장수군 산서면(山西面)- 장수현의 신서방, 남원부 내진전, 외진전방
    • 지금의 남원시 덕과면(德果面)- 덕고방(德古坊), 적과방(迪果坊).
    • 지금의 남원시 보절면(寶節面)- 고절방(高節坊), 보현방(寶玄坊).
    • 지금의 남원시 사매면(巳梅面)- 사동방(巳洞坊), 매내방(梅內坊) 또는 매안방(梅岸坊).[5]
    • 지금의 임실군 오수면(獒樹面)- 남원부 둔덕(屯德)방.
    • 지금의 임실군 삼계면(三溪면)- 남원부 오지(梧枝), 석현(石峴), 아산(阿山),3방
    • 지금의 임실군 지사면(只沙面)- 남원부 지사방.
  • 1897년 고종 34년,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面)으로 바뀌었다.

구 거사물현내의 현재 읍면연혁[편집]

  • 남원시 덕과면
    •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고절면, 지사면 일부와 임실군, 장수군 일부마을을 합해 만도, 신양, 사율, 고정, 덕촌, 금암, 용산 등 7개 리로 개편하고 면청사를 사율리에 두었다.
    • 1954년 4월 20일 공비들의 습격으로 인하여 덕과면 사무소가 소실되어 농협창고가 임시 사무소로 사용되었다. 덕과면 사무소는 1980년에 고정리 522번지로 이전하게 되었다.
    •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북금, 남금, 내동 등 3개 마을)가 임실군 오수면으로 편입되었다.
  • 남원시 보절면
    •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보현과 고절의 이름을 따서 보절면(寶節面)이라 하고 서치(書峙), 괴양(槐陽), 진기(眞基), 금다(錦茶), 신파(新波), 황벌(黃筏), 도룡(道龍), 사촌(沙村), 성시(城侍) 등 9개 리(里)로 개편, 관할하였고 황벌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가 신파리 상신으로 옮겼다.
    • 1995년 남원시 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보절면으로 되어 현재 9개 법정리,25개 행정리, 28개 자연마을 40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 남원시 사매면
    • 1897년 사동방과 매안방이 사매면으로 합병되었다.
    •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적과면(迪果面)의 오현리(梧峴里) 일부를 병합하여 서도(書道), 계수(桂壽), 인화(仁化), 화정(花亭), 대율(大栗), 월평(月坪), 오신(梧新), 관풍(官豊), 대신(大新) 등 9개 리(里)로 개편, 면사무소를 오신리에 두었다.
    • 한국 전쟁 중에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월평리로 이전한 이래 몇번 청사 이전이 이루어졌다.
    • 1995년남원시·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사매면이 되어 9개 법정리, 19개 행정리, 21개 자연마을, 37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 장수군 번암면[6]
    • 1895년상,중.하 번암방이 면(面)으로 변경되었다.
    • 1906년 상중하번암면이 남원군에서 장수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7년 번암면으로 통합되었다.
  • 장수군 산서면
    • 1895년 신서방이 수서면으로 개명했다.
    • 1906년 남원군 내진전면, 외진전면이 합병되어 장수군 수서면에 합병되었다.
    • 1914년 수서면이 산서면으로 개명했다.
  • 임실군 오수면
    • 1906년 남원부 둔덕면이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4년 둔덕면이 임실군 남면을 통합해 둔남면(屯南面)으로 개명.
    • 1983년 2월 15일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를 편입하여 14개 법정리를 관할에 두었다.
    • 1992년 오수면(獒樹面)으로 개명했다.
  • 임실군 삼계면
    • 1906년 남원군 오지(梧枝), 석현(石峴), 아산(阿山)3면이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4년 3면이 삼계면으로 통합되었다. 후천리등 16개리.
    • 1994년 12월 신정리, 망전리가 임실읍으로 편입되었다.
  • 임실군 지사면
    • 1914년 남원군에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7)역주 삼국사기4권 주석편 (하)
  2. “임실군 청웅면 홈페이지”.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 
  3. http://ss.jangsu.go.kr/index.sko?menuCd=AF0100000000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행복한사람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 매안방은 원래 구내방(丘內坊)인데 당시 남원부사 정엽이 구내방(丘內坊)의 구(丘)는 공자(孔子)의 휘(諱)이므로 지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손하다 하여 그가 이곳 구내방을 유람하다 지형을 보고 지은 매화시(梅花詩)에 연유하여 구내방의 구(丘)자를 매(梅)자로 고쳐 매내방(梅內坊)이라 했는데 후에 매화낙지형국의 지형에 따라 매안방(梅岸坊)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6. 번암면의 蟠자는 원래 반으로 읽히는데 어느사이에 번으로 음이 변했다.그래서 番자로 바뀌었는데 蟠으로 써도 상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