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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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택
鄭人澤
작가 정보
출생1909년 9월 12일(1909-09-12)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한성부
사망1952년 8월 4일(1952-08-04)(42세)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어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직업소설가
학력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
활동기간1930년 ~ 1952년
장르소설, 번역
부모정운복(부)
배우자권영희
자녀정태은(차녀)

정인택(鄭人澤, 1909년 9월 12일 ~ 1952년 8월 4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소설가이다.

생애[편집]

의친왕 망명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언론인 정운복의 아들이다.[1] 한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평안북도 의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매일신보》, 《문장》 기자를 지내면서, 사소설, 심리소설 위주로 약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문단 데뷔작은 1936년 발표한 〈촉루〉이다. 작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지식인 청년이 주인공인 〈촉루〉는 〈미로〉(1939)와 〈여수〉(1941) 연작으로 이어져 정인택의 대표작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문인보국회에 참가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이 무렵 만주 이주를 배경으로 쓴 〈검은 흙과 흰 얼굴〉(1942) 은 전형적인 친일 작품으로 꼽힌다.[2]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친일 작품은 소설 6편과 창작집 1권을 포함해 총 13편이 밝혀져 있다.[3]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의 연인으로 알려진 권영희와 결혼했고,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월북하였다.[4] 정인택은 일제 강점기부터 이념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썼고 광복 후에는 보도연맹 가입[5] 기록이 있을 뿐 문단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게 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월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인택은 병사하였다. 권영희는 몇 년 후 정인택의 또다른 친구인 월북 작가 박태원과 재혼했으며, 박태원 슬하에서 자란 정인택의 차녀 정태은이 북조선의 유명 작가가 되었다.[6] 정인택의 월북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조선에 거주하는 누나를 만난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이 자신의 블로그[7]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을 밝히면서 공개되었다.

주요 경력[편집]

참고 자료[편집]

  • 권영민 (2004년 2월 25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859쪽쪽. ISBN 8952104617. 

각주[편집]

  1. 정범준 (2006년 5월 25일). 《제국의 후예들》. 서울: 황소자리. 428쪽쪽. ISBN 8991508189. 
  2. 윤성효, "개척소설은 친일소설과 달라" 제기 - 소설가 김동민씨 〈한국 문학사의 탐색〉에서 지적 《오마이뉴스》 (2003.8.3)
  3. 김재용 (2002년 8월). “친일문학 작품목록”. 《실천문학》 (67호): 123~148쪽. 2007년 9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9월 22일에 확인함. 
  4. 최재봉 (2006년 5월 15일). “월북작가 박태원 가족사랑 지극 - 북 행적 보여주는 가족사진·친필 편지 공개”. 한겨레. 2008년 6월 1일에 확인함. 
  5. 광복 후에는~: 김기진 (2002년 5월 15일).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서울: 역사비평사. 80쪽쪽. ISBN 8976962583. 
  6. 퍼슨웹,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반백(半白)의 아들 - 소설가 구보씨의 아들 박재영씨 인터뷰 Archived 2007년 9월 28일 - 웨이백 머신, 2006년
  7. 행복한 꿈과 삶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Archived 2007년 10월 15일 - 웨이백 머신 (다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