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숭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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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겸(金崇謙, 1682년 11월 28일(음력 10월 30일)~1700년 11월 30일(음력 10월 20일))은 조선 후기의 학자, 시인, 문인이다. 자는 군산(君山). 호는 관복암(觀復庵). 본관 안동(安東).

생애[편집]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손자이며, 역시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의 아우인 김창협의 아들이다. 어머니 연안 이씨는 이단상의 딸로, 인현왕후의 친정 오라비 민진후는 김숭겸에게 이모부가 된다.[1] 김창흡 등은 그의 숙부가 된다.

김숭겸이 8세 때인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 노당(老堂: 노론) 영수였던 조부 김수항이 사사(賜死)되자[2] 청풍부사로 있던 아버지 김창집이 사직하여 영평(永平)에 은거할 때 함께 지냈다. 이후 1694년 갑술환국으로 김수항이 신원되고 김창협도 수 차례 관직이 제수되었지만 김창협이 모두 사직하였기에[3] 김숭겸도 벼슬에 나서지 않고 영평(永平)의 백운산(白雲山)·봉은암(奉恩庵) 등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하다가 1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사후에 사촌형 김제겸의 셋째 아들 김원행이 양자로 입적하여 대를 이었다.

저서[편집]

  • 《관복암시고》(觀復庵詩稿)

각주[편집]

  1. 김창집 문과 급제 기록: 처부 이단상 Archived 2015년 12월 26일 - 웨이백 머신 민진원 문과 급제 기록: 처부2 이단상 Archived 2015년 12월 26일 - 웨이백 머신
  2. 《숙종실록보궐정오》, 숙종 15년(1689년) 윤3월 28일(을축) 1번째 기사
  3. 숙종실록보궐정오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10월 3일(정유)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