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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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구분[편집]

저는 제 6공화국이 노태우 정권만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포함하는 말인가요? --PuzzletChung 2004년 9월 19일 (日) 09:08 (UTC)

헌법의 개정 여부에 따라서 숫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엉망 2004년 9월 19일 (日) 12:48 (UTC)

윗분 틀리셨읍니다.ㅜ 사실은 대통령 바뀔때마다임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221.151.7.250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221.151.7.250님,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헌법이 바뀌어서 그랬던 것이지, 헌법이 바뀔때 공화국을 따로 표기합니다. 1987년 노태우 정권 이후는 6공화국입니다.--222.232.244.167 2007년 11월 1일 (목) 04:18 (KST)[답변]

9번의 헌법개정이 있었고 9명의 대통령이 재임했습니다만 현재는 6공화국입니다. 공화국의 구분은 헌법의 본질적 내용의 변화가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합니다. 참고로 전부(면) 개정 여부로 판단하는 것은 2공화국을 탄생시킨 3차 개정이 일부 개정의 형식이라 온당치 못합니다. --Hun99 2007년 11월 1일 (목) 11:30 (KST)[답변]

모든 것은 일반적인 내용을 ...[편집]

모든 이들이 이용하는 사전이라면 일반적인 내용을 싣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jtm71 2006년 10월 21일 (일) 22:14 (KST)[답변]

수정부탁 틀렸음[편집]

우리 한국에 있는 친일파는 그렇게 경제 발전, 등 좋은 일을 하지 안았습니다. 주로 탄압하는 일을 했지요 수정 부탁합니다...

우리 한국에 있는 친일파는 그렇게 경제 발전, 등 좋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인 인데요 주로 사람들을 혹사시키고 세금을 너무 많아 부과하고 먹을 것도 썩은 것만 주는 등 민족의 자존심을 빼먹을 사람들입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221.151.7.250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영문판의 한국사내용 반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편집]

영문판의 한국사내용 반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편집기술이 매우 미숙하여 그림자료나 여러 표를 첨부할 수 없으니, 여러분께서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Wikipetan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웹사이트에서 퍼온 글[편집]

아래는 사용자:58.230.59.119님이 쓰신 위키백과의 쓰신 글

숙종 때에 이르러 붕당 정치가 변질되고 그 폐단이 심화되면서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대두되었다. 붕당 정치가 변질되자 정치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왕권 자체도 불안하게 되었다. 이에 영조와 정조는 특정 붕당의 권력 장악을 견제하기 위하여 탕평 정치를 추진하였다. 탕평 정치는 특정 권력 집단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붕당 정치의 폐단을 일소하지는 못하였다.

아래는 웹사이트에 있는 글

붕당 정치가 변질되고 그 폐단이 심화되면서 일당 전제화의 경향이 나타났다. 영조와 정조는 특정 붕당의 권력 장악을 견제하기 위하여 탕평 정책을 추진하였다. 탕평 정치는 특정 권력 집단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붕당 정치의 폐단을 일소하지는 못하였다. 탕평 정치로 강화된 왕권을 순조 이후 왕이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외척을 중심으로 한 소수 가문에 권력이 집중되고 정치 기강이 문란해지는 세도 정치가 전개되었다. 이로써 부정부패가 널리 퍼지고 백성에 대한 수탈이 심하여졌다. 이에 광범위한 농민들의 저항 운동이 전개되었다.

-- 리듬 2007년 1월 24일 (수) 13:46 (KST)[답변]

환국과 배달국[편집]

한반도에 유적이 없는 환국과 배달국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 대책이 없다면 '신화'란으로 따로 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jtm71 2007년 3월 21일 (수) 11:10 (KST)[답변]

일단 유적에 따른 분류와 분리해 놓았습니다. jtm71 2007년 3월 24일 (토) 09:00 (KST)[답변]

환국과 배달국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이 한반도에 고착화 된 시기는 BC300~249년 연나라 진개 침공 이후입니다. 그전엔 중국 황하 북쪽 지역은 바이칼호로 부터 내려온 유목 북방계통 씨족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진개 이전 후조선은 현재 만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반도엔 환국과 배달국 유적이 있을리 없습니다.--Tol6560 (토론) 2019년 6월 1일 (토) 04:49 (KST)[답변]

'일제시대'는 옛 말 ...[편집]

'일제시대'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제 시대' 토론에도 적어 놓은 내용입니다만, 그 설명대로라면, 현재 '일제시대'라는 용어를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일제시대'는 '일제강점기'의 옛말로 되어 있고, '일제시대'라는 말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일제강점기'로 바꾼 후 사용하기를 '지양'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내의 언론.출판물(논문을 포함)은 '일제강점기'라는 명칭을 따르고 있습니다. jtm71 2007년 3월 24일 (토) 08:51 (KST)[답변]

한국사 Logo 관련 문제[편집]

지금 한국사에 올라와 있는 그림 파일에는 한국사가 韓國史로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문으로 적어놓는다면 우리 역사에대한 주체적인 역사인식을 대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Wikipetan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 대한 내용[편집]

환단고기는 정사가 아닌것으로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라는 공식적인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 할 것이라 생각하여 삭제합니다. - 관련논문 : 대종교 관련문헌에 위작 많다;「규원사화」와「환단고기」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 1989, 서울, 한국사연구휘보, 국사편찬위원회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Wikipetan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정설이 아니라 해서 모두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예를들면, 족보는 일가친척 모두를 기록한 것입니다. 역사로 치면 정사로 생각할 수 있고, 세보 상계는 자기 직계 조상만 알기 쉽고 간략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세보가 6하원칙에 의거 상세한 기록하진 않았지만, 상세하지 못할뿐이지 모두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환단고기에서 맞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쓰는 사람이 어떤 역사를 쓸 땐, 전혀 근거 없이 쓰진 않기 때문이고, 짜집기를 했던 뭘 했던, 100% 사실로 인정할순없지만, 반대로 100% 허위로 부정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참고할만한 가치는 있습니다.--Tol6560 (토론) 2019년 6월 1일 (토) 04:58 (KST)[답변]

출처요구에 대한 대응[편집]

'출처요구' 표시가 붙어 있다면, 그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출처요구'에는 마땅히 출처가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를 제시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삭제대상입니다. jtm71 2007년 10월 28일 (일) 12:20 (KST)[답변]

출처가 제시되기 전까지 이곳에 해당 내용을 보관합니다. jtm71 2007년 10월 30일 (화) 22:05 (KST)[답변]

19세기에 들어와 평등 사상과 내세 신앙을 주장한 로마 가톨릭이 유포되면서 백성들의 의식이 점차 높아져서 크고 작은 봉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정부는 로마 가톨릭이 점차 교세가 확장되자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 부정과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사교로 규정하고 탄압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중석기 시대[편집]

이전에 '한국의 중석기 시대' 삭제에 대한 문의에서 이런 답변이 있었는데, 국사편찬위원회의 문답란에서는 중석기 시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jtm71 2007년 10월 28일 (일) 13:02 (KST)[답변]

중립적 시각 유지 필요[편집]

'우리'라는 명칭은 중립적이지 못하며, 전반적인 내용의 중립성 유지 위반이 우려됩니다. jtm71 2007년 10월 30일 (화) 17:24 (KST)[답변]

본문에서 이동[편집]

10개월 가까이 방치된 내용을 본문에서 이동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용에 적용하려면 작업이 완료된 후에 본문의 내용에 덧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에 외국의 글을 번역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jtm71 2007년 10월 30일 (화) 18:41 (KST)[답변]

가장 오래된 토기의 연대는 약 기원전 8000년이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는 약 기원전 6000년에 시작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그 사이의 2000년간 은 중석기시대라 명명하기도 한다. 기원전 2500년에는 청동기시대가 성립된다. 한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2333년에 첫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다고 한다. - 일연의 삼국유사에 묘사된다. - 이 고조선의 세력 범위는 만주지역과 한반도 일대에 펴져 있었다. 기원전 3세기경 고조선은 쇠퇴하고 한나라의 4군이 설치된다.

고대시대때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공존하는 삼국시대가 전개된다. 이 시기는 삼국의 문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초기 문화와 정치 크게 기여한 시대이다. 일본의 고대 기록은 일본의 초기 봉건제가 한반도로 부터 건너왔음을 입증하고 있다. 사실 현재의 일본국왕은 자신의 68째 생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I, on my part, feel a certain kinship with Korea, given the fact that it is recorded in the Chronicles of Japan that the mother of Emperor Kammu was of the line of King Muryong of Paekche," 그리고 ""I believe it was fortunate to see such culture and skills transmitted from Korea to Japan." 삼국들은 경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중국의 제국에 대항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한때 중국보다 강력했었다. 신라의 국력은 점차 증강되어 676년 삼국을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동쪽 만주지역으로 가서 발해를 세운다.(698 - 926) 곧,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와 함께 발해의 역사가 전개되는 남북국 시대의 도래인 것이다.

9세기가 되자 통일 신라의 국력이 쇠퇴해 갔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후삼국 시대가 전개되게 된다. 이러한 혼란을 종식시키고 왕건이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세운다. 고려 시대에는 법이 제정되고, 행정 체계가 개선되었으며 불교 국가가 되었다. 1238년에는 원의 침략으로 결국 원의 속국이 되었다.

1392년 이성계 장군이 조선을 건국한다.(1392-1910). <<계속 번역중>>

편년 문제[편집]

본문의 시대 구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를 따르고 있지만, 북한의 연구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언급이 필요할 듯합니다. jtm71 2007년 11월 1일 (목) 02:15 (KST)[답변]

출처가 필요합니다.[편집]

한국의 역사#개괄 부분을 비롯하여 '무단인용'이 언급된 고려와 조선의 내용들은 독자연구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다른 곳에서 인용한 것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jtm71 2007년 11월 2일 (금) 09:00 (KST)[답변]

세부 항목과 중복 내용 정리[편집]

세부 항목들, 예컨데 고려, 조선 등과 중복되는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세부 항목들의 요약문만 한국의 역사에 수록하도록 하겠습니다.Nichetas (토론) 2009년 5월 25일 (월) 15:02 (KST)[답변]

내용을 대폭 감축시키신건 잘하셨는데, 고대사 부분은 너무 축소 시킨 경향이 있습니다. 최소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부분은 따로 다시 복구 해야할 듯 싶습니다.--Ph (토론) 2009년 5월 28일 (목) 23:11 (KST)[답변]
그러시지요.Nichetas (토론) 2009년 5월 29일 (금) 00:45 (KST)[답변]

위만은 중국 사람인데 왜 한국사에 편성합니까?[편집]

위만은 1,000여 명 연나라 병사로 고조선의 수도 평양 지역만 기습 점령한, 고조선 전체를 장악했던 것이 아닙니다. 위만이 평양을 점령한 후 중국인들 유입 지속됐습니다. 위만조선 100년 ~ 한 4군현 고구려가 수복하기전까지 700년 정도 그 지역을 5천년 역사에서 일부만 점령했을뿐입니다. 위만은 주문왕 희창 9번째 아들 위강숙 희봉 후손으로 100% 중국사람입니다. 위만에 망한 것은 기씨조선 왕실이지 고조선 전체가 아닙니다. 1,000여명에 불과한 연나라 병력으로 기습 왕실이 전복됐다고 고조선 전체가 망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왕실이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고, 위만조선 왕실은 중국사람 위만입니다. 따라서 위만조선은 한국사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나라 전체가 망한 것이 아니기에, 부여, 동예, 옥저, 진=마한 진한 변한, 여러 소국으로 분할 존재했기에 위만조선을 추방한다해도 명맥이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조선은 단군조선-위만조선이 아니라, 전조선=단군조선-후조선=예+맥 연합체 기자조선으로 이뤄졌습니다. 예족은 삼감의난 이후 상나라 유민을 중국 전역에 노예로 분할 보내는 상민정책 피해서 요하로 유입됐고, 상나라 왕족였던 기족이 중심였는데, 만주지역 동북쪽 스키타이 계통 부여계와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 후조선입니다. BC300~249년 연나라 진개 침공으로 요하 평양 왕검성을 잃고 왕검성을 현재 평양으로 이전하면서, 부여계 맥족은 평양 예족 연대 줄어들면서 독립적인 개체가 됐고, BC194년 평양 예족 왕실이 망하면서 완전 독립 국가 출발했습니다. 부여계는 북방종족 맥족임에도 예족 상나라 달력을 썼기 때문에 문명적인 연대관계로 생각됩니다.

기자조선 전신인 상나라는 중국사가 아닙니다. 주나라가 상나라 수도를 점령 멸망시켰을 때, 상왕족인 기자 서여 기씨일족은 북쪽 백적족 지역에 있었고, 기자 동생인 선우씨는 백적족 서쪽 태원에 있었기 때문에 태원 선우씨가 있는겁니다. 그 얘기는 황하 북쪽 지역은 북방계통 혈족들이 점령 거주하고 있었다는 뜻이고, 주무왕 동생들 연령대를 고려하면, 실질적 행동은 군권 상징인 강후 부월 출토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위강숙이 북방계 그지역을 관할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기자는 기씨일족을 이끌고 평양=요하로 이동했는데, 이때, 위강숙은 둘째 아들을 반란 감시자로 함께 보냈습니다. 5,000병사와 함께 요하에 도착한 것이 아닌, 왕족 기씨 일족과 부리던 노예들 5,000명이 이동한 것이라, 요하지역에 어떤 세력이 있었다면 망명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상나라가 북방계통 씨족들이기 때문에 이동 할 수 있었고, 삼감의난 발생 이후 상민정책 피해 도망간 많은 북방계 많은 씨족들이 합류하면서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된 겁니다. 한국인 유전자는 C,N,O 3계열 유전자로 구성돼있고, O계열 M176 이 다수를 구성하고 있지만, 절대 다수 50%를 넘지 못합니다. N계열은 홍산문화 유적지 고인골에서 나타나고 있고,C계열은 북방유목계통 유전자로 BC600년경 중앙아시아에서 확장한 이란계 스키타이=소그드인 혈통으로, 부여계 맥족 혈통으로 생각됩니다. O계열은 N계열에서 분화한 유전자고, O1b2-M176이 한국에 가장 많은 유전자긴해도, 중국인 유전자로 생각하던 O2a2 계열 역시 모두 합치면 M176 계열보다 많습니다. C,N,O 3가지가 한국인을 구성하고 있고, 예족은 O1b2-176계통으로 만주 한국 일본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 생각하던 유전자가 중국에 대량 분포 나타나는 이유는, 삼감의난 평정후 황하 남쪽 지역에 송나라를 세우고 전공있는 상왕족인 미자 계를 왕으로 임명했기 때문이고, 사마르칸트 강국 소무구성이 중국인 성씨로 넓게 분포해있는데, 강국 소무구성 왕실 성씨가 온씨로, 고구려 온달 신라 온군해 백제 온조로 나타나고, 부여 대소왕 동생이 세운 갈사부여=흉노 지배받던 갈족, 갈족성씨인 석씨는 갈이 자갈같은 돌을 의미하기 때문에 석씨 성을 썼습니다. 또, 청나라 만주족=여진 말갈은 발해와도 관련 있는 혈족, 말갈 역시, 부여 대소왕 동생 갈사부여 갈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스키타이 계통이 한국과 중국에 공통 성씨로 존재하고, 부여와 관련 있기 때문에 북방종족 맥, 북방유목계통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후조선=예맥은 기자예족+북방맥족 연합체로 생각됩니다.

기자조선 왕을 주 무왕이 봉했다는 중국 관점 때문에 사대주의 거부감 생각하지만, 조선은 중국관점에서 중국 동쪽에 있는 국가란 의미로 작명한 이름이고, 북방계 상나라가 황하계통 주나라에 망한 시점에서 완벽한 분리는 상식적이지 못합니다. 주무왕은 상나라 태자 무경에게도 친동생들을 감시자로 배치했고, 동생인 위강숙은 둘째 아들을 반란 감시자로 기자에게 붙였습니다. 요하는 위강숙 관할 위나라에서도 상당히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직접 감시할 순 없기 때문에 적장자가 아닌 둘째 아들을 보냈습니다. 주공 단의 강고 핵심은, 상나라 유민 반란하지 않도록 소통하고 감시하라는 것입니다.

주족 주나라 관점에서 요하 기자조선은 반란 감시 대상 소국일뿐인데, 중국 역사 지도들에선 중국 제후들은 북경 연나라까지만 표시되죠? 처음엔 영향 받았겠지만,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이 주나라 왕실과 독립적인 개체로 변한것처럼, 북방계통으로 구성된 기자조선은 반란 감시는 받았지만, 전신인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와는 태생적 개별 국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에 사대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생각합니다.

많은 성씨 직계 조상을 기록한 세보인 상계에서 기자조선과 관련된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고, 역사 언급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현대에서만 부정하는 것은 국가 주관 아닙니까? 역사적 진실을 공부하는데 국가 주관은 중국과 일본 역사 왜곡을 보면 한국 주관 역시 걸림돌입니다.

북방동이계 치우와 경쟁하는 내용 존재하고, 홍산문화 요하주변엔 단국이 존재했고, 황하 북쪽엔 북방 동이계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국가 이름은 여러가지로 나타나는데, 상나라 구조를 보면 성씨, 지역혈족을 나타내는 호족의 성, 그 호족에서 적장자가 아닌 서자가 떠나서 다른 지역에 일가를 이루면 씨가 되는데, 첫번째 성을 대종, 두번째 씨가 소종입니다. 오랜 시간 지나면 많은 소종들이 발생하고, 초기 국가들은 성씨와 국명이 일치 할 수 밖에 없는, 적장자 대종 종손=왕=사제 역할하기 때문에, 많은 족읍들로 구성됐고, 왕이 있던 곳이 대읍였죠? 족읍들은 혈족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닌, 전쟁에서 잡아온 농사짓는 노예들과 함께 구성됐습니다. 많은 국가가 있었던 것이라기 보단 많은 북방계 족읍들이 있었던 겁니다.

종宗마루= 시示보일 + 면宀집, 시는 말뚝에 제물인 동물 걸어 놓은 형상으로, 종은 제사를 지내는 집을 뜻합니다. 마루는 마당이 있는 한옥에 실외로 개방된 거실을 말하고, 농경사회 대가족이 마루에 제사상 차리고 마당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자기 성씨 부모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종손=본처 큰아들 적장자 계승원칙, 종가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같은 부모 핏줄 제사를 지내면서 인식하고, 가족 문제를 사이좋게 양보 토론 푸는데 본 목적이 있고, 적장자 종손 중심으로 족읍들이 구성, 대종과 교류하는 혈족 구조라 협력할 수 있는겁니다.


상나라 마지막왕 제신 주왕이 주나라 문왕 희창을 잡아와 유리성에 7년간 가뒀었죠? 주나라가 있던 기산과 상나라 수도 조가 까지 거리를 보세요. 거의 600Km나 되는데 평민도 아닌 주족 왕을 잡아왔습니다. 기마를 갖추지 못했다면 가능한 일입니까? 기마를 갖춘 상황에서 작은 씨족 국가들이 독립적 별개 국가로 생각하긴 어렵습니다.--Tol6560 (토론) 2019년 6월 1일 (토) 03:58 (KST)[답변]

아직 위만이 중국 사람이라 는건 빌혀지지 않았습니다. 125.138.101.56 (토론) 2023년 9월 10일 (일) 11:15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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