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알바니아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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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알바니아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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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나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을 대피시키는 미군
날짜 1997년 1월 16일 ~ 8월 11일
장소 알바니아의 기 알바니아
결과 살리 베리샤 정권의 퇴진
교전국
알바니아 알바니아 시위대
알바니아 알바니아 사회당
알바니아 알바니아 육군
알바니아 남알바니아 민병대
알바니아 알바니아 정부
알바니아 알바니아 민주당
알바니아 알바니아 경찰
알바니아 북알바니아 민병대

알바 작전

미국의 기 미국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기 북대서양 조약 기구
지휘관
알바니아 살리 베리샤
병력
알바니아 30,000명
피해 규모
1700 ~ 2000여명

1997년 알바니아 폭동(1997 rebellion in Albania)은 1997년 1월 16일부터 8월 11일까지 알바니아에서 발생한 폭동 및 내전 사건이다.

개요[편집]

1990년대 들어서 냉전이 종식됨과 동시에 알바니아는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오랜 사회주의 체제로 인한 낙후된 경제 상황 탓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피라미드 회사들은 이러한 혼란을 틈타 파고들었다. 그들은 인플레이션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국민들에게 고수익 보장을 약속했다. 그들의 유혹에 약 200만 여명의 알바니아 국민들은 이들에게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그 수는 당시 알바니아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알바니아 정부와의 유착 관계를 통해서 가능했었다. 이들 피라미드 회사는 1997년부터 연쇄적으로 파산하기 시작하면서 파국이 시작되었다.[1]

폭동의 발생[편집]

피라미드 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자, 그들에게 투자한 국민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그해 1월 16일부터 남부 지방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으며, 규모는 커져 수도 티라나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그러다가 2월 20일블로러에서 대학생들이 투쟁을 벌였으며, 일주일 후인 2월 27일에 시위대가 블로러에 있는 대학교 내에서 습격 사태를 벌여 6명의 공무원과 3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여 유혈 사태로 번졌고, 마침내 3월 1일에 시위대들은 근처에 주둔해 있던 해군 기지를 점령하면서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하지만 폭동은 점점 내전으로 확산되었고, 평화 유지를 위해 3월 28일이탈리아, 미국, 독일, 그리스를 비롯한 다국적 군대가 투입되었다.

결과[편집]

알바니아의 대통령인 살리 베리샤는 마침내 조기 총선을 약속하였고, 그 해 6월 29일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여당인 알바니아 민주당이 패하고 야당인 알바니아 사회당이 승리하였다.[2] 살리 베리샤는 7월 24일에 퇴진하였다.

8월 11일에 외국 군대가 철수하여 사태는 종결되었다. 그 결과 3,800여명의 민간인, 군인, 경찰이 희생되었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