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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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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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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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서독 총선거는 서독 연방의회의 496석의 의원과 서베를린에 할당된 22석의 의원들을 선출하기 위해 1969년 9월 28일에 실시되었다. 총 33,523,064명의 유권자가 참여한 가운데 86.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배경
[편집]1966년 이후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총리 하에 기민련과 사회민주당 간의 대연정이 성립했다. 그러나 대연정은 마르크와 가치재정립 문제를 둔 사민당 소속 경제장관과 기민련 소속 재정장관 간의 갈등으로 사실상 끝나 있었고, 유권자들은 대연정 하에서 사실상 무시를 당하고 있는 빌리 브란트를 비롯한 사민당 장관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선거 결과
[편집]정당 | 지역구 | 비례대표 | 의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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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 | % | +/− | 의석 | +/− | 득표 | % | +/− | 의석 | % | +/− | 의석 | % | ||
독일 사회민주당 (SPD) | 14,402,374 | 44.0 | +3.9 | 127 | +33 | 14,065,716 | 42.7 | +3.4 | 97 | −11 | 237 | +20 | 45.8 | |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 (CDU) | 12,137,148 | 37.1 | −1.8 | 87 | −31 | 12,079,535 | 36.6 | −1.4 | 106 | +28 | 201 | −1 | 38.8 | |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연합 (CSU) | 3,094,176 | 9.5 | −0.4 | 34 | −2 | 3,115,652 | 9.5 | −0.1 | 15 | +2 | 49 | ±0 | 9.5 | |
자유민주당 (FDP) | 1,554,651 | 4.8 | −3.1 | 0 | ±0 | 1,903,422 | 5.8 | −3.7 | 30 | −19 | 31 | −19 | 6.0 | |
독일 국가민주당 (NPD) | 1,189,375 | 3.6 | +1.8 | 0 | ±0 | 1,422,010 | 4.3 | +2.3 | 0 | ±0 | 0 | ±0 | 0 | |
기타 정당 | 335,792 | 1.0 | -0.3 | 0 | ±0 | 379,689 | 1.1 | -0.5 | 0 | ±0 | 0 | ±0 | 0 | |
무효/기권 | 809,548 | — | — | — | — | 557,040 | — | — | — | — | — | — | — | |
합계 | 33,523,064 | 100 | ±0.0 | 248 | ±0 | 33,523,064 | 100 | ±0.0 | 248 | ±0 | 518 | ±0 | ±0 | |
등록유권자/투표율 | 38,677,235 | 86.7 | — | — | — | 38,677,235 | 86.7 | — | — | — | — | — | — | |
Source: Federal Returning Officer |
사회민주당은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빌리 브란트 총재를 총리로 선출, 서독 최초의 사민당 총리를 탄생시킨다. 라인강의 기적이 끝나고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불만을 느낀 시민들이 신나치주의 정당인 독일 국민민주당에 표를 던졌으나, 0.7%p차로 원내 진입이 무산되었다.
선거 이후
[편집]선거 결과 기민련이 1당을 수성하자 언론들은 대체로 기민련이 신승했다고 보도했다.[2] 그러나 선거 다음날 사민당을 이끄는 브란트는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따라 독일 정국은 자민당이 기민련과 사민당 중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총리가 결정되는 상황에 처했다. 9월 30일 셸은 사민당과 연정하기로 발표했으며[3], 10월 3일에 사민당과 자민당 각 의원총회는 이를 승인했다.[4] 이로서 기민련은 서독 수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야당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