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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핀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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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딱지}}'''해럴드 핀터''' (Harold Pinter [[CH (훈장)|CH]], [[영국 제국 훈장|CBE]], [[1930년]] [[10월 10일]] ~ [[2008년]] [[12월 24일]])는 '부조리극의 대가' 로 불리는 [[영국]]의 [[극작가]]이다.
{{노벨상 딱지}}'''해럴드 핀터''' (Harold Pinter [[영국 제국 훈장|CBE]], [[1930년]] [[10월 10일]] ~ [[2008년]] [[12월 24일]])는 [[영국]]의 [[극작가]]로 [[베케트]]와 비교되는 '부조리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 인물 ==
== 생애 ==
[[1930년]] [[런던]] 동부 해크니에서 [[유태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하나 곧 그만두고 스피치와 연극학교에서 배우 수련을 받고 아뉴 맥매스터 극단에 합류했다.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데이빗 배런(David Baron) 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930년]] [[런던]] 동부 해크니에서 [[유태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하나 곧 그만두고 센트럴 연극학교에서 배우 수련을 받고 아뉴 맥매스터 극단에 합류했다.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데이빗 배런(David Baron) 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그는 [[1957년]] 처녀작 희곡 <방>을 발표했다. [[1960년]]에는 <관리인>이 크게 히트하여 세계적인 작가로 지위를 굳혔다. 그외의 작품으로 <귀향>, <풍경>, <침묵> 등이 있다. [[1966년]] [[영국 제국 훈장|CBE]] 훈장을, [[2002년]]에는 [[CH (훈장)|CH]](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훈장을 받고 [[20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1957년]] 처녀작 희곡 <방>을 발표했다. [[1960년]]에는 <관리인>이 크게 히트하여 세계적인 작가로 지위를 굳혔다. 그외의 작품으로 <귀향>, <풍경>, <침묵> 등이 있다. [[1966년]] [[영국 제국 훈장|CBE]] 훈장을, [[2002년]]에는 [[CH (훈장)|CH]](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훈장을 받고 [[20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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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2년]]에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2005년]]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며, 수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08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2427050 노벨상 받은 英 극작가 해럴드 핀터 타계(종합)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그러나 [[2002년]]에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2005년]]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며, 수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08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2427050 노벨상 받은 英 극작가 해럴드 핀터 타계(종합)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 희곡 작품 ==
1957년부터 극작을 시작하여 <방(房)>(1957) <요리운반용 엘리베이터>(1958) 등의 단막과 최초의 장막극 <생일잔치>(1958)를 연속 발표했다. 이들은 흥행적으로 실패했으나 <관리인>(1960)으로 핀터는 장기공연에 성공하고 극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는 관객은 물론 비평가들로부터 정당한 이해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핀터의 작품이 과거 연극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연극은 한마디로 연극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라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흔히 '위협의 희극'이라 불리어진다. 핀터 연극의 기본적인 상황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방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언제나 예고도 없이 외부의 파괴적인 힘의 침입을 받는 위협과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적 상황이 관객에게 미치는 정신적·심리적 효과는 핀터의 연극에서는 상황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신원과 행동의 동기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고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전혀 일상적인 논리성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데서 온다. 따라서 그의 연극은 재래의 연극과 같이 논리적인 인과관계나 인물의 성격 분석에 의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다.

핀터는 연극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연극의 존재 이유는 시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연극 자체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 체험케 하려고 한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의 경향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종래의 폐쇄된 방을 헐고 인물들의 심층(心層)을 성(性)과 시간의 프리즘으로 탐사하고 있는데 <귀향>(1965) <풍경>(1969) <침묵>(1965)(둘 다 단막) 및 <과거>(1971) <무인지대>(1975)가 그것이다. 그 밖에 <미열>(1959) <지하실> 등 많은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작품이 있다.


== 주석 ==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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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일 (목) 00:43 판

해럴드 핀터 (Harold Pinter CBE, 1930년 10월 10일 ~ 2008년 12월 24일)는 영국극작가베케트와 비교되는 '부조리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생애

1930년 런던 동부 해크니에서 유태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하나 곧 그만두고 센트럴 연극학교에서 배우 수련을 받고 아뉴 맥매스터 극단에 합류했다.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데이빗 배런(David Baron) 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그는 1957년 처녀작 희곡 <방>을 발표했다. 1960년에는 <관리인>이 크게 히트하여 세계적인 작가로 지위를 굳혔다. 그외의 작품으로 <귀향>, <풍경>, <침묵> 등이 있다. 1966년 CBE 훈장을, 2002년에는 CH(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훈장을 받고 20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배우와 극작가뿐만이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활동하였다. 셰익스피어상, 유럽문학상, 피란델로상, 데이빗 코언 영국 문학상을 받았고 국내와 해외의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고 런던의 퀸 메리 대학의 명예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로런스 올리비에 특별상도 받았다. 바르셀로나더블린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페스티발이 열렸고, 템파대학에서는 매년 <The Pinter Review>가 출판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02년에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2005년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며, 수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08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1]

희곡 작품

1957년부터 극작을 시작하여 <방(房)>(1957) <요리운반용 엘리베이터>(1958) 등의 단막과 최초의 장막극 <생일잔치>(1958)를 연속 발표했다. 이들은 흥행적으로 실패했으나 <관리인>(1960)으로 핀터는 장기공연에 성공하고 극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는 관객은 물론 비평가들로부터 정당한 이해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핀터의 작품이 과거 연극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연극은 한마디로 연극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라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흔히 '위협의 희극'이라 불리어진다. 핀터 연극의 기본적인 상황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방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언제나 예고도 없이 외부의 파괴적인 힘의 침입을 받는 위협과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적 상황이 관객에게 미치는 정신적·심리적 효과는 핀터의 연극에서는 상황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신원과 행동의 동기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고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전혀 일상적인 논리성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데서 온다. 따라서 그의 연극은 재래의 연극과 같이 논리적인 인과관계나 인물의 성격 분석에 의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다.

핀터는 연극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연극의 존재 이유는 시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연극 자체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 체험케 하려고 한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의 경향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종래의 폐쇄된 방을 헐고 인물들의 심층(心層)을 성(性)과 시간의 프리즘으로 탐사하고 있는데 <귀향>(1965) <풍경>(1969) <침묵>(1965)(둘 다 단막) 및 <과거>(1971) <무인지대>(1975)가 그것이다. 그 밖에 <미열>(1959) <지하실> 등 많은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작품이 있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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