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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드미트리 1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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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설명 =
 
|작위 = [[파일:Monomakh hat.svg|가운데|30px|link=러시아의 군주 목록]]제5대 [[러시아의 군주 목록|전러시아의모스크바 차르]]
|재위 = 1605년 6월 10일-1606년 5월 17일
|대관식 = 1605년 7월 21일
|종교 = [[러시아 정교]]
}}
'''가짜 드미트리 1세'''({{llang|ru|Лжедмитрий I}}, [[1581년]] ~ [[1606년]] [[5월 17일]])는 [[러시아모스크바]] [[동란 시대]]의 [[차르]] 참칭자이다. 그의 본명은 '''그리고리 오트레피예프'''({{llang|ru|Григорий Отрепьев}})이다.
 
[[이반 4세]] 사후 그의 아들 [[표도르 1세]]가 [[1598년]]까지 통치한 후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한다. 이로써 [[류리크 왕조]]가 단절되게 된다.
원래 그리고리는 수도사였다. 수도사 생활을 견디지 못한 그리고리는 수도원을 떠나 [[1601년]]경에는 [[모스크바]]에 거주한다. 그리고 당시부터 그리고리는 스스로가 이반 4세의 아들인 드미트리 2세라고 실제로 믿고 있었다. 당시 드미트리 2세의 귀환에 관한 불온한 소문을 조사하던 [[보리스 고두노프]]는 그리고리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그는 [[카자흐]]로 달아난 후였다.
 
이후 그리고리는 러시아와모스크바와 경쟁 관계에 있던 [[폴란드]]로 망명하여 자신이 이반 4세의 아들 드미트리 2세라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몇몇 폴란드 귀족들이 그리고리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거기서 그리고리는 [[마리나 므니제치]]라는 폴란드 귀족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폴란드 귀족들의 후원을 받는 동시에, 폴란드의 가톨릭 교회를 후원하겠다고 약속한다. [[예수회]]도 가짜 드미트리에게 자금과 교육을 지원했다.<ref> [[폴란드-모스크바 전쟁 (1605년-1618년)]] 폴란드 침공 참조</ref>
 
== 모스크바 침공 ==
 
== 차르 즉위 ==
러시아모스크바 백성들은 가짜 드미트리 1세를 드미트리 2세의 재림으로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유명한 [[보야르]] 가문의 지도자인 바실리 슈이스키([[바실리 4세]]) 역시 진짜 드미트리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으며, 진짜 드미트리의 어머니인 마르타 역시 가짜 드미트리 1세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였다.
 
가짜 드미트리 1세는 보리스 시절 탄압을 받은 귀족들을 원상복귀시키고, 보리스의 친구나 친인척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이때 자리를 차지한 사람 중에 [[미하일 1세 (러시아)|미하일 1세]]의 아버지 [[필라레트 로마노프|필라레트]]도 있었다. 그는 [[로스토프]]의 수좌 대주교에 임명된다.
 
하지만 초창기의 열광이 지나고 나자 가짜 드미트리 1세는 러시아 백성들을 실망시켰다. 그는 러시아의모스크바의 전통적 적국인 폴란드 여성을 왕비로 삼았으며, 기존 왕가의 법도를 존중하지 않았다. 또한 가짜 드미트리 1세를 따라 온 폴란드인들이 자주 소동을 일으켜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 말년 ==
 
{{전임후임
|직책=[[루스러시아 차르국]]의 [[차르]]
|임기=[[1605년]] [[6월 10일]] ~ [[1606년]] [[5월 17일]]
|전임자=[[표도르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