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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시보==
《불교시보》는 창간호부터 시작하여 [[1937년]]까지는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총독이 벌이던 심전개발 운동을 협력 지지하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적군의 응징과 국민의 지구력〉이라는 사설을 비롯하여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의 〈반도국민 협심 협력하라〉을 게재하는 등 전쟁 협력을 독려했다.
 
[[1938년]] [[1월 1일]] 자에는 [[히로히토 천황]]과 [[고준 황후]]의 사진을 1면에 싣고 〈황위가 사해에 떨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이후로도 일본군 무운장구를 기원하면서 국방헌금 납부를 독려하는 기사를 매호마다 다수 게재했다. [[1939년]]과 [[1940년]] 1월 1일에도 천황과 부인의 사진을 1면에 게재하고 친일 기사를 함께 내보냈다. 호국불교를 빙자하여 승려 지원병으로 전쟁에 나갈 것을 촉구하는 [[권상로]]의 글이나 [[직지사]]가 보국탁발로 국방헌금을 냈다는 미담 기사도 있다.
 
[[1942년]]부터는 노골적으로 '신앙보국 내선일체'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그해 [[4월 15일]]에 발간된 제80호에는 [[싱가폴]] 함락을 축하하는 기사와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사설이 실렸다. 마지막호가 된 1944년 4월 15일자에도 김태흡의 〈적국항복의 기도에 대하야〉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발행일자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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