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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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토 (한국 한자脫脫,탈탈, 몽골어: ᠲᠣᠭᠲᠠᠭᠠТогтох ), 1314년~1355년)는 의 승상이자 권신이다. 탁극락(托克托), 토크토 테무르(脫脫帖木兒)로 불리기도 한다. 메르키트(蔑里乞) 씨이며, 자는 대용(大用), 몽골 메르키트(蔑兒乞) 사람이다.

생애[편집]

마지야르타이(馬札兒臺)의 아들이다. 어릴 때 백부인 메르키트 바얀에게 길러졌다. 포강(浦江) 사람 오직방(吳直方)에게 학문을 배웠다. 15세 때 황태자 라기바흐의 겁설관(怯薛官)이 되었다. 1328년 범상제거사(梵像提擧司)의 다루가치가 되었다. 1329년 내재(內宰)의 사승(司丞)으로 관직을 옮겼다. 같은 해 5월 부정사승(府正司丞)으로 임명받았다. 1331년 호부에 관직을 받아 충익(忠翊) 시위(侍衛) 친군(親軍) 도지휘사(都指揮使)가 되었다. 1334년 동지선정원사(同知宣政院事)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중정사(中政使), 6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임명되었다.

1335년 메르키트 바얀이 권신 텡기스를 잡아 죽일 때 그 잔당들을 습격해 패퇴시키고 모두 사로잡아 바쳤다. 어사중승에 임명되었으며, 친군 지휘사로 좌아속위(左阿速衛)를 지휘하였다. 1338년 어사대부에 올랐다. 원 혜종 토곤 테무르에게 간언을 올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겸 소희선무사(紹熙宣撫使)에 임명되었다. 1340년 바얀이 교만해져 정치적 횡포가 심해지자 혜종의 황명을 받아 바얀을 영남으로 유배하였다가 독약을 내려 사사하였다.

1341년 중서우승상(中書右丞尙)에 올라 바얀의 옛 정치를 모두 개혁하고 과거를 통해 인재를 뽑는 제도를 회복했다. 1343년 혜종이 토크토를 국사원 도총재, 구양현(歐陽玄)을 총재관으로 삼아 《遼史》, 《宋史》, 《金史》 를 편찬하게했다. 1344년 병이 들어 사임했다. 1349년 병에서 회복해 중서좌승상(中書左丞尙)에 임명되었다. 1350년 중서우승상(中書右丞尙)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새로운 지폐인 지정교초(至正交鈔)를 발매했다. 또 조운사(漕運使) 가로(賈魯)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하 보수 공사를 시작해 5개월후 수로를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1351년 한산동, 유복통이 거병하여 홍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1352년 병사를 이끌고 서주(徐州)의 홍건군(紅巾軍)을 진압했다. 1354년 장사성(張士誠)을 고우(高郵)에서 포위했다. 모두 스물여덟 번 전투를 벌여 성이 함락되려 할 즈음에 하마(哈麻)의 참언을 받아 토크토가 탄핵되어 삭직(削職)되었다. 회안(淮安)에 안치되었다가 1355년 운남성(雲南省)의 대리(大理)로 유배를 갔고, 하마가 조서를 고쳐 보낸 사신에 의해 짐살(鴆殺)당했다.

사후[편집]

1362년 억울함이 밝혀져 복관되었다. 토크토의 죽음을 계기로 원은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가계[편집]

  • 백부 : 바얀(伯顏)
  • 아버지 : 마지야르타이(馬札兒臺)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