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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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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성벽
Walls of Constantinople
튀르키예 이스탄불 파티흐

파티흐-제이틴부르누 지역구 경계의 성벽 탑이 세워져 있는 복원 및 수리된 일부 성벽.
테오도시우스 성벽은(는) 튀르키예 안에 위치해 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Shown within 터키 에 표시
좌표 북위 41° 00′ 44″ 동경 28° 58′ 34″ / 북위 41.0122° 동경 28.9760°  / 41.0122; 28.9760
건설 4~5세기에 걸쳐 복원 및 추가 작업이 이루어짐
건설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2세, 테오도시우스 2세,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라클리오스, 레온 5세, 테오필로스, 마누일 1세 콤니노스
건설 재질 석회암, 벽돌
규모 최대 12m
현재 상태 육상 성벽: 부분 파괴
해상 성벽: 대부분 철거
이스탄불 당국에서 복원 작업을 진행 중
소유자 튀르키예
공공에 개방
통제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라틴 제국, 오스만 제국
전투/전쟁 아바르-페르시아 공방전, 1차2차 아랍 공방전, 토마스의 반란, 제4차 십자군, 2차 및 3차 오스만 공방전
유형문화유산
기준i, ii, iii, iv
지정일1985년 (9번째 세션)
소속이스탄불 역사 구역
참조 번호356
지역유럽 및 북아메리카

테오도시우스 성벽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어하는 삼중의 성벽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난공불락의 도시로 불리게 된 데에는 이 성벽의 도움이 컸다.

이 성벽의 높이는 약 12m나 되며 이중 삼중으로 건설되어 방패막 역할을 잘 하였다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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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우스 황제의 사후 그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가 7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당시 가장 훌륭한 행정가이자 외교가인 민정총독 안테미우스가 섭정으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이미 고대부터 이어져 온 성벽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직접 세운 성벽이 있었으나, 시가지가 너무 커져 이 성벽들로는 시가지를 충분히 방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안테미우스는 시가지를 보호하고 방위하기 위해 서기 413년부터 성벽을 건설하게 되는데, 이후 테오도시우스 법전과 더불어 테오도시우스 2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남게 된다.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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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를 갖추고 있는 성벽으로, 해자 뒤의 흉벽과 너비가 2미터 높이가 5미터인 내성벽, 너비 5미터 높이 12미터인 외성벽의 삼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내성벽과 외성벽에는 각각 96개 씩의 망루가 설치되어 있어 적을 견제하기에 용이했다. 이 성벽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전체를 감싸고 있었는데, 육로에 면한 6km정도만이 앞서 설명한 구조로 되어있었고 해안가의 성벽은 보통의 단일구조로 되어있었다.

성벽의 위력은 매우 강력해서 제국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 수도 면전까지 영토가 유린되었다 해도 이 성벽을 넘어 수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군대는 14세기까지 아무도 없었다. 1453년 투르크군도 15만에 달하는 대군을 몰고 왔으나 성내의 7천 남짓한 군대를 상대로 한 달 반 가량을 고전해야 했으며, 간신히 넘어 제도를 장악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성벽을 넘어온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가능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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