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쉐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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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쉐썬(錢學森, Qián Xuésēn, 1911년 12월 11일 ~ 2009년 10월 31일)은 중국의 항공역학 연구자, 우주 과학자이다.

생애[편집]

중국 저장 성 항저우 시에서 태어났다. 교통대학 재학 중 193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유학했다. 1939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7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가 됐다. 1949년 캘리포이나 공과대학 교수가 됐다. 1950년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체포돼 연금됐다. 1955년 연금에서 풀려난 뒤 한국전쟁 미군 포로와 교환 조건으로 중국측에 인도됐다. 1956년 중국과학역학연구소 소장이 됐다. 1958년 중국과학기술대학 창립에 참가했다. 1959년 8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중국 우주개발을 이끌었다.

일화[편집]

  • 중국은 1950년대 당시 미국 미사일 개발의 주역이었던 첸쉐썬 박사를 귀국시켜 우주개발을 시작하려 했지만, 미국 해군은 "첸 박사의 능력은 5개 사단과 맞먹는다. 귀국시키느니 죽이는 게 낫다"며 반대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한국전쟁에서 붙잡은 미군 조종사 등 고위급 포로 11명을 넘기는 '빅딜'을 통해 1955년 첸 박사를 귀국시켰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첸 박사에게 로켓과 미사일 개발에 관한 전권을 줘 '양탄일성(兩彈一星·미사일과 원자탄, 인공위성)' 개발을 이끌어냈다.[1]

외부 링크[편집]

참고자료[편집]

주석[편집]

  1. 조선일보, 우주개발, 대통령 나서 국가총력 모아야… 日은 동네철공소까지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