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라
| 첸라 | ||||
|---|---|---|---|---|
| ចេនឡា | ||||
| ||||
| 수도 | 슈레스타푸라 바바푸라 이사나푸라 샴부푸라 | |||
| 정치 | ||||
| 정치체제 | 군주제 | |||
| 데바라자 550년 ~ 598년 598년 ~ 616년 616년 ~ 635년 657년 ~ 690년 | 바하바바르만 1세 마헨드라바르만 1세 이사나바르만 1세 자야바르만 1세 | |||
| 지리 | ||||
| 위치 | 메콩강 | |||
| 인문 | ||||
| 공용어 | 크메르어 산스크리트어 | |||
| 민족 | 크메르족 | |||
| 종교 | ||||
| 종교 | 힌두교 | |||
| 기타 | ||||
| 현재 국가 | ||||
| 캄보디아의 역사 ប្រវត្តិសាស្ត្រខ្មែរ |
|---|
첸라(크메르어: ចេនឡា) 또는 진랍(眞臘)은 6세기 메콩강 중앙 유역에서 일어난 크메르족의 나라다. 《수서》 권 82에 처음 이 이름이 나오지만 뚜렷한 문자로 남지 않았고, 관련 사료가 거의 없어 국명의 유래가 분명하지 않다. 또한 첸라는 하나의 국가가 아닌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나 페니키아, 삼한, 가야와 같은 여러 나라들 혹은 도시국가들, 공국들의 연맹 혹은 문명권으로 보인다.
어원
[편집]중국 사료에 의하면 진랍은 중국에 조공한 국가의 이름이다.[1] 진랍이나 부남(扶南)은 고대 크메르어(Old Khmer language)에서 알려져 있지 않은 이름이다.[2] 민속학에서는 진랍을 중국 사료에서 지역 상품으로 언급된 '순수한 밀랍'이라는 의미로 연결지으려 하였다.[3][4] 당대(唐代) 발음으로 진랍이라는 단어가 재구현되면서 이름은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캄보디안(Cambodian)과 비슷하다.[5][6] 그러나, 캄보디아라는 어원은 진랍이란 이름이 처음 사용된 이후에 수 세기만에 생겼다고 지적된다. 따라거 진랍과 부남이라는 이름은 관련 있을 수 있지만, 마이클 비커리(Michael Vickery)는 두 단어의 의미는 모른다고 하였다.[5][6]
그러나 비슷한 설명은 점랍(占臘)이라는 후대 용어에 적용된다. 피터 해리스(Peter Harris)에 의하면, "그것은 패배한 참족이라는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점은 중국어로 참을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It very likely means 'Defeated Chams' since Zhan is the word in Chinese for Cham.)". 또한 그는 『명사(明史)』 기록을 주목하였다. 이에 의하면, "북송 경원(慶元) 연간(1195–1200) 캄보디아가 참파를 토벌하고 그땅을 차지하였다. 이때문에 국가는 점랍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원대(元代)에 진랍이라 계속 불렸다(During the qingyuan reign period of the Song dynasty, Cambodia wiped out Champa and took over its land. Because of this, the country changed its name to Zhanla. But during the Yuan dynasty it went on being called Zhenla)."라고 하였다.[6]
진랍은 문단(文單, Muntal이라는 발음으로 구현, 만달라mandala일듯)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호시노 포-로우 다쓰오(Tatsuo Hoshino Po-Lou)는 문단을 수도로 본다.[7]
힌두 신왕(Hindu god king) 데바라자(devaraja) 전통을 따라[8] 국왕은 수호신의 산스크리트어(Sanskrit) 이름이나 아바타 이름을 택하였고, 뒤에는 '~에 의하여 수호되는'의 의미를 갖는 접미사 바르만(–varman)이 붙었다. 그는 크샤트리야(Kshatriya) 전사 카스트를 위한 마누 법전(Laws of Manu)을 의미하는 마누스므르티(Manusmṛti)를 따랐다.[9]
역사
[편집]진랍은 초기에 부남의 속국이었으나, 차츰 강대해져 7세기에는 역으로 부남을 병합하였다. 왕통은 은자 깜부와 선녀 메라를 시조로 한다고 알려졌다. 사료상으로 수서에 기록된 질다사나(치트라세이나 마헨드라바르만) 왕이 600년에 재위했다고 한다. 메콩강의 중앙 유역에서 캄보디아 북서부까지를 그 영역으로 하였으며, 다음 왕인 이샤나바르만 1세는 616년 처음으로 중국 수나라에 조공을 했다.
수도는 현재의 쌈보 쁘레이꾹 유적으로, 왕을 알현하는 대회당 및 2만호 이상이 거주하는 큰 성으로 국내에 30개의 다른 큰 성이 있었다고 한다. 639년에는 파바바르만 2세가 즉위하였고, 아들 자야바르만 1세가 남부 메콩강 삼각주 지역까지 정복하며, 국내를 통일했다. 그러나 후계자의 부재로 인해 내정은 군웅 할거 상황이 되었다.
중국 측 사료에 의하면, 신룡연간(705년 - 706년)에 해안지역의 진랍과 내륙의 진랍으로 분열되었다. 해안 진랍은 해안에 가까운 메콩강 삼각주 지대에 자리를 잡고, 몇 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내륙 진랍은 메콩강 중앙 유역, 댄 렉 산지 북방에 위치하였다. 내륙 진랍이 8세기에 몇 차례에 걸쳐 당나라에 견사(당견사)를 파견했지만, 해안 진랍은 자바 지역 세력에 점거되어 있었다.
같이 보기
[편집]- ↑ Corfield (2009), 4쪽.
- ↑ Jacques (1979), 371–378, 379쪽.
- ↑ “Short History of Cambodia - Nokor Chenla The Chinese called Cambodia the land of pure beeswax.”. Narkive com. 2004년 3월 3일. 2015년 12월 12일에 확인함.
- ↑ “Why did Chinese call Cambodia Chenla” (PDF). The Son of the Empire. 2015년 12월 12일에 확인함.
- 1 2 Vickery (1998).
- 1 2 3 Zhou (2007).
- ↑ Ferlus (2012), 16쪽.
- ↑ Sengupta, Arputha Rani (Ed.) (2005). 《God and King : The Devaraja Cult in South Asian Art & Architecture》. National Museum Institute. ISBN 8189233262. 2012년 12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9월 14일에 확인함.
- ↑ Sharma (1978), 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