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의 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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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의 남정
삼국시대의 일부
날짜222년 ~ 225년
장소
오나라 남군, 유수 전역
결과 위나라의 패배
교전국
오나라 위나라
지휘관

오왕 손권
유수오

주환

강릉

주연
한당
손성
제갈근
요태 

무창

여범
서성
하제
전종

황제 조비
대장군 조인 [1]

장제
조태
왕쌍

상군대장군 조진

신비
서황
하후상
문빙
장합

정동대장군 조휴

장패
장료
윤로 
병력
100,000 명 이상

조비의 남정(魏- 吳 侵攻)은 삼국시대 위나라222년224년 두 차례에 걸쳐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침공한 사건으로 위 황제던 조비까지 직접 나가고 대군을 동원했으나 끝내 패배했다.

삼국지연의의 묘사[편집]

제1차 침공[편집]

222년 오나라이릉 대전에서 촉나라를 격파하고 남은 촉의 잔당들을 추격하기 위해 형주 서부 지역으로 가자 이에 위나라의 황제 조비는 그 틈을 타 오나라를 침공하고자 한다. 조비는 부하 조인조휴, 조진하후상에게 군사를 주어 3로로 쳐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오군의 총지휘관이던 육손은 이를 파악해 촉군 추격을 중단하고 군사를 재정비해 위군에 맞설 준비를 한다. 한편 조비는 참모 유엽가후의 만류를 물리치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세 방면의 군사를 후원한다.

한편 조인이 부하 상조, 제갈건, 왕쌍 등과 정예병 5만 명을 갖추고 유수로 진격하자 이에 손권의 부하 주환이 기병 5000명을 이끌고 이를 요격한다. 선봉장 상조는 유수성을 공격하다가 주환의 급작스러운 공격에 전사하고 위군은 대패해 조인은 겨우 탈출해 조비에게로 갔다.

남군으로 진격한 조진하후상 역시 육손제갈근의 복병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퇴했으며 조휴 역시 여범에게 패배하고 만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이라 전염병까지 돌아 기병과 보병 중 7/10이 병들어 죽고 만다. 결국 조비는 남은 군사들을 수습해 낙양으로 회군했고 이로 인해 위와 오 사이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제2차 침공[편집]

224년 촉나라의 황제 유비가 죽고 후주가 다스릴 당시 오나라의 왕이던 손권은 촉나라의 사신이던 등지의 설득으로 촉과 동맹을 맺는다. 이에 조비는 크게 노해 문무백관들을 소집하고 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해 도중 시중 신비가 만류를 했으나 조비는 이를 무시했다.

이에 맞춰 사마의가 나서 큰 전선들을 만들어 장강의 채하와 영수에서 회수로 들어가 수춘을 함락시키고 광릉에 이르러 장강을 건넌 뒤 남서를 취한다는 계책을 내놓는다. 그러자 조비는 임금이 타는 배라는 뜻의 용주를 10척이나 만들었는데 길이 20장이고 2000명을 태울 수 있는 규모였고 전선 3000척을 거둬들여 수군을 양성했다.

그리고 224년 8월 대소 장수들을 모아 출정했는데 조진에게 전군을 맡기고 장료, 장합, 문빙, 서황 등을 대장으로 삼아 선봉에 서도록 했으며 허저, 여건에게 중군 호위를 맡기고 조휴는 후군으로 삼았으며 유엽장제를 참모로 삼아 전군이 수륙 군마까지 모두 합해 30만 명에 달했다.

또한 사마의를 상서복야에 봉해 조비가 없는 동안 허창에 머물면서 국정 대사를 결정케 했다. 이에 손권은 즉각 육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부하 서성을 안동장군으로 봉해 건업과 남서를 방어케 했다. 그러자 손권의 조카 양위장군 손소가 서성에게 자신에게 군사를 주어 위군을 기습하자고 했으나 서성은 이를 반대한다.

손소가 계속 요청하자 서성은 손소의 목을 베어버리려 하고 이에 손권의 만류로 중단되지만 손소는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아 그날 밤 정예병 3000명을 이끌고 몰래 강을 건넌다. 그러자 서성은 부하 정봉에게 군사 3000명을 주어 손소를 후원하게 한다.

한편 조비는 용주를 타고 광릉에 이르러 조진이 장강 연안에 군사를 벌여세운 채 조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서성은 허수아비에 군사 옷을 입혀 군사가 몇 배나 더 많게 보이게 한다. 이를 본 조비는 크게 고민하고 그러는 사이 용주가 파도에 휩쓸려 기우뚱거리자 부하 문빙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곧 촉나라의 장수 조운이 양평관을 출발해 장안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조비는 즉각 회군했으나 회하에 이르러 손소의 기습으로 군사를 태반이나 잃고 곧 오군의 화공으로 용주까지 불타버려 조비는 겨우 군사를 수습해 후퇴한다. 하지만 곧바로 정봉이 기습해 장료가 활에 맞고 서황이 이를 구출해내며 후퇴한다.

장료는 허창으로 돌아와 결국 사망했으며 조비의 대군은 거의 전멸해 2차례에 걸친 조비의 오 정벌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각주[편집]

  1. 전쟁 도중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