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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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전투
날짜228년
장소
결과 오나라의 승리
교전국
위나라 오나라
지휘관
조휴
가규
왕릉
만총
호질
육손
주방
전종
주환
병력
10만 명[1]

9만 명[1]

삼국지 연의:80만
피해 규모
1만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힘 불명

석정 전투(石亭 戰鬪)는 228년 삼국시대위나라오나라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전투 과정[편집]

당시 제갈량의 제1차 북벌을 막은 데 성공한 위나라사마의는 양주 도독 조휴로부터 오나라 양주 파양 태수 주방이 위나라를 돕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사마의위나라 황제 명제에게 소식을 알리고 군사를 일으키고자 했다. 명제는 일단 조휴에게 명해 오나라를 치게 하고 사마의를 시켜 조휴를 돕게 하고, 가규에게는 만총, 호질 등 4군을 지휘하여 동관으로 진격하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나라의 함정이었는데 조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심양을 향해 진격한다. 한편 오나라에서는 주방이 조휴를 유인하는 사이, 손권이 육손에게 황월을 주고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주환, 전종이 좌우독이 되어 각기 3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조휴를 맞아 공격했다. 조휴는 자신이 속았음을 알고 군사를 물리려고 했다가, 속은 것이 부끄럽고 또 자신의 병력이 많고 정예하므로 오나라 군대와 교전했다.

조휴가 패퇴하여, 오나라 군대는 위나라 군대를 협석까지 추격하여 만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고, 수레 1만 대와 조휴 군대의 기계를 대부분 빼앗았다. 왕릉이 목숨을 바쳐 힘껏 포위망을 뚫었으므로 조휴 군대는 궁지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한편, 조예의 명령으로 동관으로 진격한 가규는 동관에 적의 방비가 없는 것을 보고, 오나라 군대는 조휴가 진격하는 환현 쪽에 집결했으며 조휴는 이와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조휴를 응원하는 꼴로 진군했다가 조휴가 졌다는 소식을 듣고 신속히 진군하여 의병으로 오나라 군사를 물러나게 하였고 조휴는 퇴각하여 석정까지 물러났다.

결과 및 영향[편집]

조휴의 소식은 사마의에게 전해져 사마의 역시 철군을 하고 이는 촉나라에도 전해져 제갈량이 다시 제2차 북벌을 일으킨다.

이 싸움의 패배로 조휴는 악창이 나 죽었고, 가규도 급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이후 위나라의 양주 방면 전선은 만총이 전장군 · 도독양주제군사가 되어 담당했다.

《삼국지 연의》에서의 석정 전투[편집]

삼국지 연의에서는 주 교전처가 환성 - 협석이 아닌, 석정으로 되어 있다. 또, 서성이 참전하여 활약하는 것으로 나온다.

각주[편집]

  1. 진수 저,《삼국지》권56 오서 주치주연여범주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