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복·정호선 묘 및 신도비

정윤복·정호선 묘 및 신도비
(丁胤福·丁好善 墓 및 神道碑)
대한민국 용인시향토문화재
종목향토문화재 제47호
(1999년 1월 21일 지정)
위치
용인 전대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용인 전대리
용인 전대리
용인 전대리(대한민국)
주소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산 21-3
좌표북위 37° 16′ 53″ 동경 127° 12′ 56″ / 북위 37.28139° 동경 127.21556°  / 37.28139; 127.21556

정윤복·정호선 묘 및 신도비(丁胤福·丁好善 墓 및 神道碑)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이다. 1999년 1월 21일 용인시의 향토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정윤복(丁胤福, 1544~1592)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개석(介錫)이다. 1567년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1]에 등용되었다. 1589년 정여립의 난이 일어나자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2]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참판을 제수받고 왕을 호종하다 가산군(嘉山郡)[3]에 이르러 병사하여 가매장하였다가 현 용인시 포곡읍 전대리의 묘소로 이장하였다. 이후 선조 38년(1605) 조정에서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의 훈호를 내리고,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하였다.[2]

정윤복 묘소 좌측에 모셔진 정호선(丁好善, 1571~1633) 역시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자는 사우(士優), 호는 동원(東園)으로 정윤복의 아들이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병사를 거느리고 죽령에 진을 쳤다가 강화가 성립되자 철수, 이듬해 병사하였다. 사후 조정에서 호성청난원종공신(扈聖淸難原從功臣)의 훈호를 내림과 동시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증직하고, 다시 인조 26년(1648)에는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하였다.[2]

묘역에서 500m정도 떨어진 곳에 정윤복과 정호선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정윤복의 신도비는 크기가 총고 331cm, 비고 218cm, 폭 92cm, 두께는 25cm이며 비문은 성균관 대사성 정경세가 지었고, 1613년(광해군 4)에 세웠다. 정호선의 신도비는 크기가 총고 326cm, 비고 214cm, 폭 92cm, 두께 26cm이며 비문은 춘추관 이준이 글을 짓고 사간원 대사간 윤필병이 글을 쓰고 전액하였으며 1802년에 세웠다.[2]

각주[편집]

  1. 승문원(承文院) : 조선시대에-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
  2. 현지 안내문 인용
  3. 가산군(嘉山郡) : 평안북도 박천의 옛 지명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