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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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세(鄭經世, 1563년 ~ 1633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진주 어사공파(御史公派).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 시호는 문장(文莊).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문인으로, 학문으로는 퇴계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였고 예학(禮學)에 뛰어났다. 석문(石門) 정영방의 스승이자 류성룡의 아들 수암 류진의 스승이기도 하다. 1610년 전라감사로 재직하던 당시 정인홍 등 대북세력에 의해 탄핵당하였고 인조반정이후에 다시 등용되어 홍문관 제학에 임명되었다.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여 산성을 수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며 또 뛰어난 장수를 선발하는 것과 군대의 정예화를 주장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1629년 이조판서대제학에 올랐다. 저서에는 《우복집(愚伏集)》, 《사문록(思問錄)》, 《주문작해(朱文酌海)》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