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룡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화룡
李華龍
출생1914년
일제강점기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평양
사망1984년 2월 24일 (70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고려대학교 부속 병원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다른 이름별명명동의 황제·신사·박치기왕
직업청년운동가, 사회운동가, 영화제작자
소속사화성영화사 사장
배우자임봉옥
자녀2남 4녀

이화룡(李華龍, 1914년 ~ 1984년 2월 24일)은 대한민국사회 운동가, 영화제작자이다.

생애[편집]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박치기왕’, ‘명동백작’, ‘검은 신사’ 등의 별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구신익희가 모두 몰락하고 2인자로 떠오른 이기붕에게 자유당 당원 제의가 왔으나, 거절하기도 했다.

명동파를 이끌며 이정재동대문사단과 대립한 끝에 1958년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러나 이 덕분에 이정재를 비롯한 폭력배들이 5.16 쿠데타로 몰락하는 와중에 명동파는 화를 피할 수 있었다. 1960년 이화룡은 화성영화사를 차려 영화사업에 투신하며 조직폭력계를 떠났고, 조직은 신상현이 넘겨받았다. 연예계를 어용화하여 관제영화나 제작하던 임화수 등과 달리 이화룡의 화성영화사는 《박서방》, 《주마등》, 《마부》, 《임자 없는 나룻배》, 《장희빈》 등 쟁쟁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화성영화사는 1967년 등록취소되었다.

1984년 2월 24일 0시 56분 서울 혜화동 고대병원에서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묘는 선영이 있는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현 하남시)에 안장됐다.[1][2]

출연 작품[편집]

TV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