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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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尹美香
출생1964년 10월 23일(1964-10-23) (55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
성별여성 위키데이터를 편집
국적대한민국
학력이화여대 대학원
경력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배우자김삼석
자녀1녀
종교개신교(한국기독교장로회)
의원 선수1
의원 대수21
정당더불어민주당
지역구비례대표
당내 직책당무위원

윤미향(尹美香, 1964년 10월 23일 ~ )은 대한민국사회운동가(사회단체활동가), 정치인이다.

1992년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 간사, 사무국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고 2008년부터 정대협 상임대표를 거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이사장을 역임[1][2]했다. 2020년 4월 15일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3]국회의원에 당선 되었다.

생애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나온 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석사 수료했으며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국기독교장로회 간사가 되고, 1992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 간사, 사무국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고 2008년부터 상임대표를 맡았다.[4][5][6]

2013년 3월,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려 민족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늦봄 통일상' 18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늦봄 통일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양길승)는 수상자 선정과 관련하여 "2011년 1000회째를 쉬지 않고 이어온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어 냈고 꾸준한 남북연대 사업을 전개해 민족화해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라고 밝혔다.[4][5]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위안부 피해 증언이 나온 뒤 30년 동안 윤미향은 척박한 위안부 문제 운동을 이끌면서 “나도 위안부였다”는 신고전화가 들어오면 두메산골이라도 찾아가 증언을 녹음하고, 단체의 열악한 살림을 메꾸려 자신이 받은 강연료까지 털어가며 운영하면서 정대협을 1인 체제로 운영하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직접 관계하여 소통 부족 논란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정의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윤미향 대표의 1인체제는 20년 넘게 지속됐다. 다른 이들을 잘 신뢰하지 않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도 보안각서를 쓴 적도 있다. 그러니 실무자들이 내용을 잘 몰랐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 일부에선 윤미향의 남편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가 과거 보수 정권에서 공안당국의 감시에 시달린 탓에 윤미향이 극도의 보안의식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7]

결국 "위안부 할머니 이름으로 기부받은 돈을 할머니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며 정대협 정의기억연대 해체를 말한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으로 인해 단체 운영에 있어 도덕성에 타격을 받았다.

논란

  •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전액 장학금을 주는 ucla대학에서 진학했으나 "외국인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남편의 재심사건에서 일부 무죄판결받아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으로 부담했다고 밝혔다.
  • 주택 등기부등본에 의하면 1995년 1월 수원 소재 한 빌라를 구입한 이후 1999년 10월 A아파트를 구입하여 1가구 2주택을 유지하다 2002년 2월 빌라를 매각하고, A아파트를 유지한 채 2012년 4월 경매를 통해 B아파트를 2억2600만원에 낙찰받고 이후 2013년 1월 A아파트를 1억8950만원에 매각했다. 두 차례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대출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윤미향 측은 "본인이 30여년간 일하면서 모은 예금과 적금을 깨서 지급을 하고 모자란 금액을 가족한테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앞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살던 아파트를 팔았다"고 밝힌 것과 다르다.[8]
  • 2014년 4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책임사업인 '우물 파주기' 프로젝트 기부금을 모집한다면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본인 명의 계좌를 공개하여 총 1757만원의 기부금이 모였지만, 1200만원을 베트남 측에 전달하고 차액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횡령 의혹

1998년 한 위안부 피해자로부터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했던 적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한 배신감과 우울증으로 정대협을 4년간 떠나 있기도 했었다. 그 피해자는 윤미향에 대해 '우리 이름을 팔아서 번 돈으로 용산역 앞에 3층짜리 빌딩을 사뒀다'고 오해했고 그 고소장에 서명한 위안부 피해자는 8명이나 되었다.[4] [5] [6]

학력

  • 1983년 ~ 1987년: 한신대학교 신학과 학사
  • 1987년 ~ 1989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 석사과정 수료
  • 2005년 ~ 2007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경력

  • 1989년 1월: 한국기독교장로회 간사
  • ~ 1991년 11월: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간사
  • 1992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사
  • ~ 1997년 12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국장
  • 1999년 8월 ~ 1997년 12월: 한국여성재단 사무처장
  • 2002년 2월 ~ 2005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
  • 2005년 2월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 2012년 5월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

상훈

  • 2007년 제3회 이우정평화상[9]
  • 2012년 제9회 서울특별시여성상 대상[10]
  • 2013년 제18회 늦봄 통일상[11], 제20회 한신상[12]
  • 2015년 제9회 의암주논개상[13]

어록

  • 인터뷰 내용 중에서(2013년 8월 26일)[6]
    •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위안부 할머니들은 몇 명 참석했나?: 처음에는 여성 단체 활동가들만 집회에 참석했다.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처음 공개석상에 선 것은 그해 8월 14일이었다. 이 분이 고(故) 김학순 할머니였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처음 문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율을 느낀다. 어려운 요청이었는데 이 분은 선뜻 공개 증언을 받아들였다.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 정부가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게 너무 기막혀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동안 숨겨졌고 은폐됐던 위안부 문제가 세상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 초기에 위안부 할머니의 소재를 어떻게 파악했나?: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 접수를 받겠다고 알렸을 때 누구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신고하진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운을 뗐다. 주위에서 알까 봐 몸을 사렸다. 처음에 우리는 다섯 분의 할머니를 각각 만났다. 이 분들은 자기만 혼자 살아남아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당시까지 위안부 생존자가 매스컴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삶에서 중시하는 가치라는 게 있다. 가정을 뒷전에 두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헌신하는 당신의 심리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가? 공명심인가?: …신앙 같은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내 꿈은 목회자였다. 한신대 신학과를 나와 이화여대 대학원(기독교교육)에 다니면서 교회여성단체에서 일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기생관광' 실태를 접한 뒤 현장에 데모를 나가면서 '정대협' 간사직을 맡게 됐다. 비록 목회자의 길로는 못 갔지만, 그런 마음으로 일했던 것 같다.
    • 남편은 대학 시절 함께 '운동'을 했던 사이였나?: 아니다. '수요집회'를 시작할 때 남자 참가자들이 없었다. 당시 일본 군부가 위안부에게 나눠줬던 콘돔인 '돌격 1번(突擊 一番)'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그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며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지금은 해체된 '반핵평화운동연합'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이는 '수요집회'에서 나와 교대로 메가폰을 잡았다. 할머니들이 '둘이 결혼하면 좋겠구먼' 하며 바람을 잡았다. 할머니들이 중매를 선 셈이다. 일년 만에 결혼했으니까. 지금은 경기도 수원에서 지역신문사를 하고 있다.
    • 일본의 한 각료는 "미국도 전쟁에서 현지 여성에 대한 매춘과 강간이 있었고, 한국도 베트남전에서 그랬다. 뭐 다를 게 있느냐"고 말한 적 있다.: 어느 전쟁에서도 군인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성범죄가 자행돼 왔다. 미국이나 우리도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군인 위안용'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다.
    • 과거에 있었던 일을 부인하는 일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작년에 일본의 한 극우단체 회원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하수구에 막대기를 하나 끼워놓고 갔다. 박물관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하수구라니, 얼마나 비굴한 일본의 모습인가. 매스컴에서는 이를 '말뚝 테러'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가 '작대기를 꽂은 놈아, 고맙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박물관이 어디 있는 줄 몰랐을 텐데, 네 놈 때문에 잘 알려졌다'고 말했다. 일본을 상대하는 데는 이런 여유가 필요하다. 아베는 갈 데까지 갔다. 일본 정부의 본심을 세상에 다 보여줬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본이 원하는 바다. 일본 정부는 우리를 자극해서 갈등과 분쟁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를 빌미로 자신의 국민을 뭉치게 하려는 것이다. 일본이 자극할 때 우리가 응수하지 않으면 사그라든다.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과거 진상 조사와 자료 구축을 하고, 국제사회와 연대를 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학교에서는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가르친다. '홀로코스트'가 있던 시기에 '일본군 위안부 참상'도 있었다는 걸 교과서에 포함시키도록 해야 한다. 일본 정부를 부끄럽게 만드는 게 해답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결국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게 될 것이다.
  •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촉발된 정의연 및 정대협 관련 논란에 대하여
    • (30년 전) 이(용수) 할머니 첫 전화는 '내가 아니고 내 친구가…'였다. [14]
    •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 [15]
    • 외교부와 피해자 할머니들 간 접촉을 막았다는 의혹에 대해: "음해이자 가짜뉴스이다."

강의

저서

  • 《20년간의 수요일》. 웅진주니어. 2010년. ISBN 9788901114910
  • 《25년간의 수요일》. 웅진주니어. 2015년

칼럼

역대 선거 결과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2020년 총선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더불어시민당 9,307,112표
33.3%
비례대표 7번 국회의원당선.png 초선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1. 하시모토, 미군에 매춘 권유하자 주일미사령관 대답이… 한겨레 신문 2013.05.14
  2. 윤미향 "박근혜가 망친 위안부 문제, '정의기억재단'이 해결하겠다". (오마이TV)장윤선·박정호의 팟짱. 2016년 6월 8일.
  3. 기민도. ‘윤봉길 손녀’ 윤주경·‘4부자 의원’ 김홍걸·‘수요집회’ 윤미향 당선. 서울신문. 2020년 4월 17일.
  4. 장세풍. 늦봄 통일상에 윤미향 정대협 대표. 내일신문. 2013년 4월 1일.
  5. 김미란. 정대협 윤미향 대표…18번째 ‘늦봄 통일상’ 수상자. 고발뉴스. 2013년 4월 1일.
  6. 최보식. 세계에서 가장 오래 끌어온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22년'…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조선일보. 2013년 8월 26일.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최보"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7. 1인 체제가 문제 키웠다
  8. 윤미향, 수년간 '1가구 2주택'..담보대출도 없어 자금출처 '의혹'
  9. '이우정평화상'은 평화운동의 선구자, 여성인권운동의 대모,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선도자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일구기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이우정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내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10. 윤미향 상임대표, 서울시여성상 대상 수상. 여성신문. 2012년 6월 29일.
  11. '늦봄 통일상'은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려 민족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12. 송아영. 올해 한신상 수상자에 ‘김해성 목사·윤미향 대표’. 한국대학신문. 2013년 4월 6일.
  13. 김동규. 제9회 의암주논개상에 정신대대책협 윤미향 대표 선정. 뉴스1. 2015년 9월 25일.
  14. “윤미향, 위안부 할머니 이용 논란...이미 2004년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대협(정의연 전신)을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2020년 5월 10일. 2020년 5월 12일에 확인함. 
  15. 김동호 (2020년 5월 12일). “윤미향 "딸 다니는 UCLA까지…탈탈 털린 조국 생각나". 2020년 5월 12일에 확인함.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제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2020년 5월 30일 ~
더불어시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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