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알찬 글 후보/의민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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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민태자

기준

  1. 믿을 수 있는 높은 품질
    • 전문적인 기준이 적용된 잘 짜여진 글인가?
    • 주요한 사실과 세부사항, 문맥이 포함된 포괄적인 글인가?
    •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기반한 확인이 이루어진 인용을 통한 신뢰할 수 있는 글인가?
    • 편향된 시각이 없는 중립적인 글인가?
    • 주요한 내용의 변함이 없이 안정된 글인가?
  2. 세부적인 양식 기준: 편집 지침과 다음 조건에 적합하는가?
    • 개요 문단에 전체 문서의 내용이 간단히 잘 요약되어 있는가?
    • 목차의 구성이 알찬가?
    • 인용이 일관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가?
  3. 멀티미디어: 저작권에 대한 설명이 충족하는 미디어 사용 정책에 일치하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있는가?
  4. 길이: 불필요한 세부사항 없이 주요 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의견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파란 링크 옆에 한자 병기, 예컨대 이승만이나 박정희 같은 인물도 굳이 한자 병기를 해야 하나 싶습니다. 몇몇은 지워주세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5월 6일 (화) 02:44 (KST)[답변]
완료 내부 고리로 연결되는 인명의 한자 병기는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5월 6일 (화) 03:19 (KST)[답변]
그리고 이은이 왕위에 올랐다라는건 좀 어폐 아닌가요? 어차피 조선은 망했고 실권 또한 조선총독부가 모두 가져갔는데 그냥 왕이라고 표현하면 정말 재위한 왕으로 혼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왕이라 한 부분은 주로 이왕이라 해서 "작위"라는 것을 강조했으면 좋겠네요. 왕위 계승도 그냥 "이왕 계승"이라 하면 될것 같고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5월 6일 (화) 13:42 (KST)[답변]
실권이 없었다고 해도 일제 강점기 왕세자의 지위에서 왕위를 승계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왕위 계승’이라는 표현 자체도 왕의 작위를 승계했다는 표현이고요. ‘이왕 은 전하’라는 칭호도 이씨 왕가의 왕 이은이라는 뜻이고 왕공족에서 작위의 명칭은 그냥 왕입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5월 6일 (화) 13:53 (KST)[답변]
비슷한 의미로 왕위보다는 작위로서의 왕을 뜻하는 "왕작"이 있습니다. 그게 더 명확해 보여서요. 마찬가지로 왕위를 승계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 천황에게 이왕이란 작위를 수여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5월 6일 (화) 13:56 (KST)[답변]
완료 소제목 명칭을 이왕가 계승으로 변경하고, 창덕궁 이왕으로 수정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5월 6일 (화) 14:14 (KST)[답변]
관련 작품은 필요 없지 않나요? -- J13 (토론) 2014년 5월 10일 (토) 18:13 (KST)[답변]
배우나 관련 작품같은 경우는 목록성으로는 필요없겠지만 만약 출처 추가하고 서술해서 풀어쓴다면 존치 가능하다 봅니다. 물론 없어도 그만이겠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5월 10일 (토) 18:30 (KST)[답변]
크게 문제될 사항이 아니면 문서 내에 유지하지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5월 11일 (일) 22:57 (KST)[답변]
완료 출처를 추가하고 서술형으로 수정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5월 13일 (화) 16:26 (KST)[답변]
가계도는 조금 더 축약시킬 수 없을까요? --아드리앵 (토·기) 2014년 5월 16일 (금) 15:49 (KST)[답변]
완료 축약된 가계도를 문서에 올렸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5월 16일 (금) 20:10 (KST)[답변]
제가 이전에도 지적한 내용이지만, 관련 작품 문단에서 "1971년에 제1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계몽영화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미술상, 우수계몽영화상영상을 수상하였다." 이런 내용은 지극히 그 작품에 대한 내용인데 굳이 포함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1]와 같이 이런 내용이 포함되면 더 좋겠습니다. 또 문단 제목을 대중문화에서 의민태자와 같은 걸로 바꾸는게 어떨까요? 관련 작품이라 하기엔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또한 틀이 2개가 쓰였는데,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으며 본문을 통해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삭제를 검토했으면 합니다. -- J13 (토론) 2014년 6월 2일 (월) 18:49 (KST)[답변]
수상 내역은 삭제하였습니다. 그리고 링크에 주신 기사에서 후지 TV와 관련된 내용만 추가했습니다. 이석이 반발했다는 내용은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이석이 의친왕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의민태자와는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도 아니고, 기사에 나온 것처럼 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J13님이 언급한 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인물 정보와 군인 정보 틀을 말하시는 건가요? 일반적으로 위키백과 문서에서 인물 정보과 군인 정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군인 정보 틀을 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군인 정보 틀의 삭제를 원하신다면 직접 문서 내에서 삭제하셔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문단 제목은 어떤 문서에서는 'OOO를 다룬 작품'이라고도 하고 있던데 '관련 작품'이라고 하여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6월 2일 (월) 20:39 (KST)[답변]
아무리 가림을 했지만 축약된 가계도 말고 인조 이후의 가계도는 필요하지 않지 않나요? 고종이나 대원군이면 몰라도 이은은 그 다음 세대라서 혈통이 꼬이지도 않아서 말이죠. -- S.H.Yoon · 기여 · F.A. 2014년 6월 3일 (화) 03:50 (KST)[답변]
완료 축약된 가계도 이외의 가계도는 삭제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6월 3일 (화) 05:34 (KST)[답변]
찬성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국적의 경우 각 국적을 가지고 있던 기간도 써주면 좋을 것 같네요.--NuvieK 2014년 7월 17일 (목) 03:21 (KST)[답변]
완료 국적 보유 기간을 병기하였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17일 (목) 08:28 (KST)[답변]
찬성 이 정도면 문제될건 없을것 같은데요. -- Germantower (토론) 2014년 7월 18일 (금) 05:39 (KST)[답변]
의견 도입부 부분에 평가 문단의 내용을 작게나마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에 제외된 이유도 넣으면 좋겠군요. --Tsunami 2014년 7월 20일 (일) 00:15 (KST)[답변]
의견 금책과 금인, 칠장복 등의 용어 주해나 별도의 문서로 다루어 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국사 분야에 지식이 얕은 사람이 읽기에는 일일이 찾아보지 않고는 조금 어려운 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덧붙여,본 링크를 살펴 본 결과, 본래에는 왕비에게는 옥책을, 왕세자 등에게는 죽편으로 만든 죽책을 하사하였는데 대한제국이 되며 왕이 황제로 격상하여 금책을 하사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찾았습니다. 금책을 하사한다는 부분에 내용을 덧붙여도 유용하지 않을 까 싶네요. --Tsunami 2014년 7월 20일 (일) 00:26 (KST)[답변]
완료 도입부에 평가를 추가했고, 금책과 금인에는 주해를 달았으며, 칠장복은 면복에 내부 링크를 걸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09:50 (KST)[답변]
추가된 해당 내용이 좀 문제가 있는것 같군요. 네이버 캐스트에서는 순종황제가 황태자일때 부황인 고종황제에게 금책을 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황태자 역시도 왕(王)급이니 금책을 받은 것이고요. 의민태자 항목에도 이은이 영왕으로 책봉되면서 금책과 금인을 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주해 2번에는 "황제와 황후는 금책과 금보, 왕과 왕비는 옥책과 금보, 왕세자와 왕세자빈 등은 죽책과 금·은·옥인을 사용하였다."라고 적혀있습니다. 황제와 황후가 받는 금책과 금보를 영친왕에 책봉된 이은이 받는다는 앞뒤가 안맞는 서술인데요, 무엇이 맞는 겁니까?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0:54 (KST)[답변]
주해의 기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출처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기술한 네이버캐스트 외규장각 의궤입니다. 그리고 영친왕이 받은 인장은 금라고 지칭하지 않고 금이라고 합니다. 국왕의 인장을 '보'라고 칭하고 국왕 이외의 인장을 '인'이라고 합니다. 영친왕이 받은 것은 금책과 금인이라고 실록에도 적혀있습니다(垠爲英王, 錫之以金冊金印七章之服。).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1:52 (KST)[답변]
저는 책을 묻고 싶은건데요. 황제와 황후는 즉위할때 금보와 함께 금책을 받는다는데 그럼 황태자나 친왕도 일괄적으로 금책을 받는건가요? 그에 대한 기술은 어디에도 없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1:55 (KST)[답변]
관련 자료를 찾아보아야겠지만 현재는 왜 책문을 금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군요. 순종, 의친왕, 영친왕 모두 금책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 일반적인 책문과 인장에 서술은 학예연구관이 기술한 내용이 맞으며, 대한제국으로 변모하면서 제도를 새롭게 정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것은 주해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1:58 (KST)[답변]
그건 순종황제가 황태자였을때니까요. 문제는 저 황제와 황후가 금책을 받는 부분이 상충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황제랑 왕은 격이 다르듯이 같은 재질의 책을 쓸리는 없다고 보거든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2:01 (KST)[답변]
실록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1900년 8월 7일자에 장례원경 이주영(李胄榮)이 아뢰기를 “친왕을 책봉할 때에 혹은 금책과 금인을 쓰기도 하고 혹은 옥책과 옥보를 쓰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금책과 금인으로 하되, 친림하여 책배하는 것으로 마련하라.”고 적혀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2:04 (KST)[답변]
저도 조금 찾아보았습니다만 원구단에서 즉위할 때 옥보, 즉 옥으로 된 인장을 받았고, 1899년 12월 22일 7번째 기사에서는 황태자인 순종이 표문을 올리기를 금보와 옥책으로 남긴들 부황의 은혜를 일일이 다 헤아릴수 없다라고 쓴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황제랑 황후도 여전히 옥책을 쓰고, 옥보랑 금보를 더불어 같이 썼다라고 볼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헌종, 철종, 진종을 황제로 추숭할 때도 옥책과 금보를 올렸다고 실록에 나와 있네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2:06 (KST)[답변]

책봉을 받는 사람에게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임명장인 책문(冊文)과 인장이 내려졌다. 책문과 인장은 책봉을 받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재질을 달리 하였다. 일반적으로 황제와 황후는 금책과 금보, 왕과 왕비는 옥책과 금보, 왕세자와 왕세자빈 등은 죽책과 금·은·옥인을 사용하였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변모하면서 제도와 문물이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격상되었고, 황태자에게는 금책과 금보, 친왕에게는 금책과 금인을 내렸다.

고종이나 명성황후에게 옥보를 올린 적도 분명히 있습니다. 금책과 금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문서는 아니고 주해이며,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차원에서 부가적으로 설명을 적은 것이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이 되네요. 위의 인용문은 현재 주해의 상태입니다. 추가할 문장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2:17 (KST)[답변]
일반적이라는 예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금책과 금보는 황태자에게 올려지는 것을 그대로 황제에게도 올린다는데 급을 보자면 전 그럴리는 없다고 봅니다. 확인하셨듯이 어보 문서에서도 황제와 황후에게 옥보를 올린다고 하였고 제가 인용한 실록 기사에서는 옥책과 금보를 추숭된 황제들에게 올렸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위에 올린 실록에서의 예를 따라 "황태자에게는 금책과 금보" 부분 앞에 황제에게는 옥책과 옥보, 금보를 함께 올렸다라는 부분을 추가해주시면 좋겠네요. 쓸데없어 보일수도 있지만 역사 문서인만큼 일반론보다는 적혀있는 사실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록에서는 황제에게 금책을 올린다는 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2:24 (KST)[답변]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금책과 금보를 받았음을 실록에서 확인하였습니다. 1907년 8월 8일에는 책봉도감에서 금책문 제술관(金冊文製述官)에 김학진, 금보전문 서사관(金寶篆文書寫官)에 이재완을 주청하여 차출하였다고 나옵니다. 또한 같은 해 9월 6일에 황제 즉위에 관련하여 수고한 관리들을 포상하였는데 독금책관(讀金冊官)과 독금보관(讀金寶官)이라는 직책을 가진 관헌을 포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2:38 (KST)[답변]
같은 날 다른 기사입니다. 1907년 9월 6일의 2번째 기사에서는 "진하(陳賀)하고 조서를 내렸을 때의 각 차비관(差備官) 이하의 관리와 추봉(追封)·진봉(進封)하였을 때의 정사(正使) 이하의 관리, 그리고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만들었을 때의 당상(堂上) 이하의 관리들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라고 옥책이라고 역시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황제에겐 옥보와 금보, 옥책과 금책 둘다 쓰인것이네요. 제가 논하고자 하는건 황제에게 올린게 옥책이냐 금책이냐지, 황태자를 책봉하는 책봉도감은 논외의 대상이라 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2:43 (KST)[답변]

책봉을 받는 사람에게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임명장인 책문(冊文)과 인장이 내려졌다. 책문과 인장은 책봉을 받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재질을 달리 하였다. 일반적으로 황제와 황후는 금책과 금보, 왕과 왕비는 옥책과 금보, 왕세자와 왕세자빈 등은 죽책과 금·은·옥인을 사용하였다. 존호를 올릴 때 왕과 왕비에게 옥보와 옥책을 올리고, 승하 후에는 금보와 옥책을 올렸다. 그러나 이 원칙이 엄격히 지켜지지는 않았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변모하면서 제도와 문물이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격상되어 황제에게 금·옥책과 금·옥보, 황태자에게 금책과 금보, 친왕에게는 금책과 금인을 사용하였다.

수정된 인용문 입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2:48 (KST)[답변]
수정해 주셨군요. 사실 여담에 불과하지만 사실에 어긋나면서까지 쓸수 없기에 본의 아니게 말꼬리를 집은 격이 되었네요. 수정 감사드립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0일 (일) 12:54 (KST)[답변]
문서의 발전을 위해서니 개의치 않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3:02 (KST)[답변]
찬성 위의 주해 건도 해결이 되었으므로 찬성하겠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1일 (월) 07:37 (KST)[답변]
찬성 찬찬히 읽어 본 결과, 제시 드린 의견 이외에는 별달리 고칠 부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Tsunami 2014년 7월 22일 (화) 10:42 (KST)[답변]
의견 보완이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하며 반대 및 추가적인 의견이 없는 점, 후보 등재 이후 넉 달여간의 시간이 흐른 점 등에 미루어 슬슬 알찬 글에 등재하여도 손색이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Tsunami 2014년 9월 10일 (수) 14:45 (KST)[답변]
이릅니다. 수양버들 같은 경우도 5-6개월 만에 찬성 5개를 얻음으로써 선정되었는데 그러기엔 아직 적정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글이면 이미 선정되었지만 알찬 글인 만큼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할줄로 압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10일 (수) 14:47 (KST)[답변]
찬성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Jjw (토론) 2014년 10월 4일 (토) 08:33 (KST)[답변]
찬성 알찬 글 조건을 충족하는 글이네요. --Nt (토론 | 기여 | ) 2014년 10월 4일 (토) 09:46 (KST)[답변]

선정합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10월 24일 (금) 15:57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