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고즈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오타니 고즈이

오타니 고즈이(일본어: 大谷光瑞 (おおたに こうずい) 오오타니 고즈이[*], 1876년 12월 27일 ~ 1948년 10월 5일)는 일본의 종교가이다. 1903년에 이버지의 뒤를 이어 정토진종 니시혼간지(浄土真宗 西本願寺)의 22대 세습법주가 되었다. 작위는 백작, 법명(法名)은 교뇨(일본어: 鏡如 (きょうにょ) 쿄뇨[*]).

영국 런던에서 유학을 했던 혈기넘치는 젊은 인텔리로, 일본 서본원사(西本願寺)의 젊은 주지승이자 학승(學僧)이었다. 27세가 되던 젊은 나이에 중앙아시아 1차 탐험(1902년 ~ 1904년)을 시작으로 1914년까지 총 3차까지 원정을 떠난다.

둔황(敦煌)과 쿠차 등지의 예술품들을 구입하거나 약탈해와 소장을 하고 있었는데, 서본원사(西本願寺)의 파산으로 그 일부를 당시 일본의 재벌인 구하라에게 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1916년 구하라의 고향친구였던 데라우치 총독이 있는 조선총독부에 기증되었다. 물론 구하라가 그냥 선물로 준 것은 아니고, 조선광산채굴권에 대한 뇌물로 준 것이다.[출처 필요] 이 물품들은 해방 후 한국 국고에 귀속되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타니의 전체 소장품은 무려 5,000점이나 되었는데, 그 중 1/3은 일본에, 나머지 1/3은 한국에, 나머지는 중국 뤼순(旅順)에 분산되었다.

승려였던 오타니는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혜초당나라 승려가 아니라 신라의 학승이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같이 보기[편집]

전 임
오타니 고손
제2대 오타니 백작가(정토진종 혼간지 파) 당주
1903년 ~ 1914년
후 임
오타니 고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