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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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에드워드 릴리 스테티니어스 2세(Edward Reilly Stettinius, Jr., 1900년 10월 22일 - 1949년 10월 31일)는 1944년부터 1945년까지 프랭클린 루스벨트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당시의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었다.

그는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1920년까지 폼프레트 학교를 다녔고, 그 후 1924년까지 버지니아 대학교를 다녔다. 1926년 제너럴 모터스의 부사장 존 리 프래트의 보좌관이 되었고, 1931년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제너럴 모터스에서 그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맡았고, 이것으로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접촉하였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위하여 국가부흥부에서 잠시 일하였다. 1934년 그는 미국 철강 회사에 들어가 상급 관리자가 되었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생산관리부(the Office of Production Management)의 감독자로서 행정부에 참여하도록 요청받았다. 2년 뒤, 동맹국들에게 무기 대여법에 의한 원조의 책임자(무기대여국장)가 되었고, 이는 1943년 국무부 차관이 될 때까지의 직책이었다. 1944년 11월 당시 국무부 장관 코델 헐의 건강 악화로 장관직을 승계하였다.

스테티니어스는 1945년 6월 26일 공식적으로 설립된 국제 연합의 핵심 인물이자 의장이었다. 또한 얄타 회담, 덤바턴오크스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얄타 회담을 앞두고 그는 부하직원에게 한국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아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1]

국무부장관으로서 스테티니어스는 핀란드에서 발견된 러시아의 암호 책을 소련에 돌려주는 결정을 하였다. 이것은 러시아의 전송문을 해독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방해한 것이었다. 그 전송문의 상당수는 나중에 해독되었는데 이것은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에까지 소련의 세력이 폭넓게 침투해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그 이후에 스테티니어스는 국무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초대 주국제연합의 미국 대사가 되었다. 1946년 6월 그는 이 자리도 사임하고, 소련과의 긴장을 완화하는 수단으로서 국제 연합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해리 S. 트루먼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1946년1947년 버지니아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주석[편집]

  1. 돈 오버도퍼 [2002년 7월 25일]. 《두 개의 한국: The Two Koreas》. 길산, 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