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 모토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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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모토지로
明石元二郎
1864년 9월 1일 - 1919년 10월 26일
Akashi Motojiroh.jpg
태어난 곳 일본 지쿠젠 국 후쿠오카 번
죽은 곳 일본 후쿠오카 현
복무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육군
복무 기간 1889년 ~ 1919년
최종 계급 대장
주요 참전 청일 전쟁
러일 전쟁
기타 이력 타이완 총독

아카시 모토지로(일본어: 明石元二郎 (あかし もとじろう), 1864년 9월 1일(겐지 원년 8월 1일) ~ 1919년(다이쇼 8년) 10월 26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며 화족이다. 한국통감부 경무총장, 제6사단장, 타이완 총독 등을 역임하였다. 계급은 육군대장 훈1등 공3급 남작이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일본공사관 무관지냄. 후쿠오카번 출신. 사관학교 졸업. 일본 육군참보본부가 아카시에게 제공한 자금은 1년 일본 세입의 250분의 1인 1백만엔. 러시아, 독일, 영국 등지에서 러시아 내분공작을 벌임. 공작금만큼 러시아 내에 폭동이 일어났다고 함. 레닌,가폰 신부, 공산주의 사상가 쿠로포트킨, 폴란드의 독립운동가 시리야크스, 민권사회당의 수령격인 프레하노프, 자유당의 좌경파 인물 슬르베,막심 고리키 등 수많은 인사와 접촉. 그들과 아카시는 제정러시아를 몰락하게 하는데 국적을 초월한 동지. 단기전을 꾀한 일본 입장에서 제정러시아 내부의 이런 반체제 인사들이 내부에서 계속 종전을 주장하면서 입지가 강화되는 것이 큰 도움됨. 이토 히로부미는 아카시 혼자 일본군 10개 사단의 일을 했다고 찬양함.

이후 아카시는 한국에 통감부 설치후 경무총감 겸 주차헌병사령관으로 와서 13도의군허위 심문. 한국에서 경험을 반성하여 대만에서는 인자한 총독이 되었다라고 전해짐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안도 사다요시
제7대 타이완 총독
1918년 ~ 1919년
후 임
덴 겐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