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페일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세라 페일린

출생 1964년 2월 11일(1964-02-11) (53세)[1]
미국 미국 아이다호 주 샌드포인트 시
거주지 미국 미국 알래스카 주 와실라 시
학력 하와이 퍼시픽 대학 - 졸업[2]
노스 아이다호 대학 - Attended
마타누스카-수시트나 대학 - 졸업
아이다호 대학 - (과학 과정)[3]
정당 공화당
종교 초교파 개신교[4].[5]
배우자 토드 페일린 (1988)
자녀 Track, Bristol, Willow, Piper, Trig
서명
Sarah palin signature.svg
웹사이트 SarahPAC, official Facebook

세라 루이즈 페일린[6] (Sarah Louise Palin, IPA[peɪlɪn], 1964년 2월 11일 ~ )은 미국의 정치인이다. 공화당 소속으로 알래스카 주지사로 재직 중,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었으나 낙선하였다. 2009년 6월, 알래스카 주지사직을 사임하였다.

초기 생애[편집]

아이다호 주에서 태어났으며, 결혼 전 성은 히스(Heath)이다. 세라 히스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는 자녀들을 데리고 알래스카 주 스캐그웨이로 옮겼고, 그 후 앵커리지 교외의 와실라에 정착하였다. 세라 히스는 와실라에서 평범하게 성장하였다. 와실라 고등학교 졸업 후 하와이 퍼시픽 대학교, 노스아이다호 대학교를 거쳐 아이다호 대학교(모스코 소재)에서 언론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학창 시절 농구 선수로 활동하였고, 1984년에는 알래스카 주 미인 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학업을 마친 세라 히스는 알래스카 주로 돌아와 앵커리지의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곧 와실라의 지역 신문사로 옮겼다. 1988년 에스키모 혈통의 토드 페일린과 결혼하여 성을 페일린으로 고쳤다.

초기 정치 경력[편집]

지역 신문사에서 활동하던 페일린은 1992년 와실라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지역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여 유명해졌다. 1996년, 와실라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처음에 젊은 여성이라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실시하여 알래스카 주의 떠오르는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2002년 연방 상원의원에서 퇴임하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프랭크 머코스키의 상원의원 후임 또는 주지사 러닝메이트(부지사)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부지사 후보로는 다른 사람이 지명되었고, 상원의원 자리도 프랭크 머코스키의 딸인 리사 머코스키가 물려받았고 페일린은 와실라 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3년 주지사로 선출된 머코스키에 의해 알래스카 주 석유•가스보존위원회 윤리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동료 위원들의 비윤리적 행태에 반발하여 임명된 지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사임하였다.

알래스카 주지사[편집]

2007년 7월 24일에 페일린이 알래스카 방위군 군인들을 방문했다.

고령의 남성들이 지배하는 주 정치계에서 신선한 이미지의 인물로 주목받은 페일린은 정치 활동을 재개, 2006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주지사 예비선거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앞세워 프랭크 머코스키를 꺾고 주지사 후보로 선출되었다. 알래스카 주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인 프랭크 머코스키를 꺾고 후보로 선출된 것 자체만으로도 정계의 파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11월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전 주지사 토니 놀스를 큰 차이로 제치고 알래스카 주 최초의 여성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또한 당선 당시 만 42세로, 알래스카 주 역사상 최연소로 주지사 자리에 오른 것이기도 했다.

주지사 재임과 함께 페일린은 석유 사업과 관련된 정계와 재계의 유착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전임 주지사 시절 계속된 예산 낭비 사례를 개선하고, 감세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출 요소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머코스키 전 주지사가 주 예산으로 구입했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주지사 전용기를 이베이에 경매로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의 여성에 여러 가지 주목받을 만한 행보로 그는 미국 변방의 주지사에서 차츰 다음 세대를 이끌 정치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

부통령 후보[편집]

지명 과정[편집]

페일린은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몇 차례 부통령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8][9] 그러나 그의 정치 활동은 전부 알래스카 주에서만 이루어져 중앙 정치 무대 경험이 없고 전국적인 인지도도 높지 않아 그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출처 필요] 그렇지만, 2008년 8월 29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존 매케인은 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10] 페일린은 비록 인지도가 낮았지만, 낙태에 반대하며,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를 선호하는 등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매케인의 약점인 고령[11] 을 보완하며 젊은 층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동시에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후보 선정 탈락으로 여성표까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출처 필요]

미국에서 여성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주요 정당 소속으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1984년제럴딘 페라로에 이어 사상 두 번째였다. 페일린의 부통령 지명 자체는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모은 큰 사건이었으며, 이로써 매케인 후보는 부통령 후보 지명 직후 지지율 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12]

선거 운동과 낙선[편집]

2008년 9월 버지니아 페어폭스에서 선거운동 중인 페일린과 메케인.

2008년 9월 1일,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페일린은 정식으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한편, 전당대회 직전 페일린의 17살 난 딸이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논란이 불거졌다.[13] 전당대회를 통해 공화당은 페일린 후보를 부각시키려 했으나,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남부지방을 강타하여 행사 규모가 축소된데다가 혼전임신 스캔들로 오히려 페일린은 구설수에 오르는 수모를 겪었다. 공화당은 상황 수습에 나서 여러 인사들이 페일린을 옹호하고 나섰고, 페일린은 3일에 있었던 전당대회 연설에서 자신을 비난한 언론에 반격하였다.[14][15]

2008년 11월 4일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후보에게 365 대 173으로 패했다.

대통령 선거 이후[편집]

2009년 7월 3일 알래스카 주지사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오는 25일께 사퇴하며 남은 기간은 숀 파넬 부지사에게 지사직을 인계한다고 선언했다.[16][17]

각주[편집]

  1. “Alaska Governor Sarah Palin”.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2008년 9월 7일에 확인함. 
  2. Davey, Monica (2008년 10월 23일). “Little-Noticed College Student to Star Politician”. 《The New York Times》. 2010년 5월 25일에 확인함. 
  3. “About the Governor”. 《Office of Alaska Governor》. 2008년 4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0월 19일에 확인함. 
  4. Gorski, Eric (2008년 8월 30일). “맥케인-페일린 표에 힘을 얻은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 energized by McCain-Palin ticket)”. Political Base. Associated Press. 2008년 10월 23일에 확인함. 
  5. Newton-Small, Jay (2008년 8월 29일). “Transcript: Time's interview with Sarah Palin”. 타임. 2010년 5월 29일에 확인함. 
  6. Sarah는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용례에 의하면 세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Palin폴린, 팰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발음이 IPA[peɪlɪn] 이므로, 페일린으로 표기하여야 한다.
  7. 제2의 힐러리-오바마 쑥쑥 큰다 동아일보 2008년 1월 18일
  8. 힐러리-오바마 'YES' 오바마-힐러리 'NO' 노컷뉴스 2008년 2월 18일
  9. X세대, 미국의 주인공으로 급부상 동아일보 2008년 7월 5일
  10. 美공화 부통령후보, 44세 여성 새라 페일린 연합뉴스 2008년 8월 29일
  11. 당시 존 매케인은 72세, 세라 페일린은 44세였다.
  12. [2008 美 대선] 심상찮은 ‘페일린 효과’ 서울신문 2008년 8월 8일
  13. 조선일보 (2008년 9월 3일). '페일린 17세 딸 임신' 미(美) 술렁”. 2008년 9월 5일에 확인함. 
  14. 매일경제 (2008년 9월 4일). “페일린을 구하라…당내 여성인사들 지원 연설”. 2008년 9월 5일에 확인함. 
  15. 경향신문 (2008년 9월 4일). “페일린 “우리 가족도 부침 겪는다”…美 공화 전당대회 3일째”. 2008년 9월 5일에 확인함. 
  16. “페일린 깜짝 주지사 사퇴 이유는”. 연합뉴스. 2009년 7월 4일. 2009년 7월 5일에 확인함. 
  17. 김재홍 특파원 (2009년 7월 4일). “페일린 이달중 알래스카 주지사 사퇴 (종합)”. 연합뉴스. 2009년 7월 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