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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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西)씨는 한국 및 중국의 성씨이다.

천천히 서 徐[편집]

서(徐)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51,704명으로 조사되어, 대한민국 성씨 인구 순위 13위이다.

이천 서씨[편집]

이천 서씨(利川 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말에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냈다. 이천(利川)이란 지명은 935년 고려 태조 왕건후백제를 정벌할 때 이곳에 살던 서목(徐穆)이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준 데서 비롯됐다. 《고려사》에 따르면 서신일은 교외에 살 때 사슴이 뛰어 들어오자 화살을 뽑아주고 숨겨주었더니 사냥꾼이 와서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감사해하면서 “사슴은 내 아들인데 공에게 힘입어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리다.”라고 말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80세에 서필(徐弼)을 낳았는데, 서필에 이어 서희(徐熙), 서눌(徐訥)이 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이천 서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다.[1] 2015년 인구는 199,792명이다.

  • 장성 서씨(長城徐氏) 시조 서릉(徐稜)은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시조인 서신일(徐神逸)의 11세손으로 고려 조에 시중(侍中 종1품)을 지냈다. 2015년 인구는 10,137명이다.
  • 연산 서씨(連山徐氏)의 시조는 서준영(徐俊英)이나 이후의 문헌이 전하지 않아 서의민(徐義敏)을 1세조로 한다. 2015년 인구는 7,510명이다.
  • 남평 서씨(南平徐氏) 시조는 병부상서 대광내의령(兵部尙書 大匡內議令) 서린(徐鱗)이다. 남원부사 서호(徐顥)의 아들 서지(徐祉)가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중종 때 이조판서에 올랐다. 1985년 인구는 5,298명이다.
  • 평당 서씨(平當 徐氏) 시조 서준방(徐俊邦)이 고려조에서 형부 상서(刑部尙書 정3품)를 지내고 외적(外敵)을 격퇴시키는데 공(功)을 세워 봉성군(峯城君)에 봉해지고 그의 아들 서약진(徐若珍)과 손자 서숭조(徐崇祖)에 이르기까지 3대가 봉성군에 봉해졌다. 7세손 서원경(徐元敬)은 문하시중(門下侍中 종1품)을 역임하였다. 이천서씨 평당공파.
    • 봉성 서씨(峯城 徐氏) 시조는 서극(徐克)이다. 이천서씨 봉성공파.

달성 서씨[편집]

달성 서씨(達城徐氏)의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오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2] 2015년 인구는 407,431명이다.

대구 서씨[편집]

대구 서씨(大丘 徐氏)의 시조 서한(徐閈)은 고려조에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다. 인물로는 서거정, 서종제, 정성왕후, 서재필 등이 있다. 2015년 인구는 97,866명이다.

부여 서씨[편집]

부여 서씨(扶餘 徐氏)의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扶餘隆)이다. 그는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하면서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압송되었는데, 당 고종이 본래의 성씨인 ‘부여(扶餘)’를 ‘서(徐)’씨로 바꾸고 웅진도독으로 삼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태원군(太源君)에 봉해진 서존(徐存)을 1세조로 받들고 부여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부여 서씨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3] 인물로는 서익, 서필원이 있다. 2015년 인구는 17,145명이다.

남양 서씨 / 당성 서씨[편집]

남양 서씨(南陽 徐氏)의 시조 서간(徐趕)은 당나라 8학사(八學士)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경기도 당성(唐城)에 정착하였다. 2015년 인구는 1,725명이다. 당성 서씨(唐城 徐氏)는 남양 서씨 시조 서간(徐趕)의 12세손으로 교리(校理)를 지낸 서원길의 둘째 아들인 서득부(徐得富)를 시조로 한다. 인물로는 조선시대 북인 서경덕이 있다. 2000년 인구는 4,978명이다.

절강 서씨[편집]

절강 서씨(浙江 徐氏)의 시조(始祖)는 중국 절강성 출신 서해룡(徐海龍)이다. 그의 증손 서학(徐鶴)이 1597년(조선 선조 30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도총관(都摠管)으로 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건너와 여러 전투에서 공(功)을 세우고 경상북도 성주군 대동방(大同坊)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후 후손들이 서해룡을 시조로 받들고 선조의 고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186가구, 623명이다.

중국[편집]

서(徐, 병음 : Xu)씨는 중국 《백가성(百家姓)》 제10위이다. 인구는 대략 2,400만명이다. 기원전 2세기 제나라 출신 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고조선[古朝鮮] 창의(昌意) 계통인 소호(少昊), 고도(皋陶)、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을 원시조로 한다. 약목의 후손 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과 32세 [서언왕(徐偃王)- 동이족(東夷族).한국사람]이 유명하다.서언왕은 중원대륙에 진출한 동이족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와 서서(徐庶)가 유명하고,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이 있다. 남송(南宋)의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과 북제(北齊)의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과 원위(元魏)의 서건(徐謇), 서웅(徐雄)과 수 나라의 서민제(徐敏齊) 등은 모두 명의(名醫)로 후세에 이름을 떨쳤다.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서황(徐晃),서개(徐蓋),서패(徐覇),서상(徐詳),서원(徐原),서원(徐元),서간(徐幹),서질(徐質),서혁(徐奕),서막(徐邈),서곤(徐琨),서성(徐盛),서소(徐韶),서윤(徐胤),서봉(徐奉),서구(徐璆),서영(徐栄),서훈(徐勛),서화(徐和),서타(徐他),서수(徐隨)가 있다.

서녘 서 西[편집]

서(西)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29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西)씨의 본관은 진주, 충주가 있으나 시조와 유래는 알 수 없다.

서(西, 병음 : Xi)씨는 청 덕종 때 만주족 서납포(西拉布)와 몽골인 서림(西林)이 있었던 기록으로 보아 만주와 몽골에서 계출된 성씨로 추측된다.[4]

각주[편집]

  1. 이천 서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2. 달성 서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3. 부여 서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4. 중국의 4대 미녀 서시(西施)는 서(西)쪽에 사는 시(施)씨라는 명칭으로 서(西)씨는 아니다. 청나라 서태후는 서쪽 채에 기거하는 태후라는 명칭으로 서(西)씨가 아니다. 서문(西門)씨는 복성으로 서(西)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