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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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西夷)는 상나라 시대의 이민족 중 하나이며, 주나라 시대가 되자 서융(西戎)으로 개명되었다.

개요[편집]

서이는 서쪽에 살고 있는 이적(오랑캐)를 말한다. 상나라 시대에는 서이를 북적동이와 구별하였다.[1]

주(周)의 사람들은 서이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데 서이 중의 한 종족인 혼이(混夷)가 가장 우수하였다. 그 후에 주의 사람들은 혼이를 물리치고 서이의 패자가 되었고, 주문왕은 서이의 제후들을 이끌고 상나라에 대항해 주왕을 격파하고 주나라를 건국했다.[2]

맹자는 《맹자》에서 "(舜)은 저풍(諸馮)에서 태어나 부하(負夏)로 옮기셔서 명조(鳴條)에서 죽었는데 동이(東夷)의 사람이다. 문왕은 기주(岐周)에서 태어나 필령(畢郢)에서 죽었는데 서이(西夷)의 사람이다"라고 하고 있으며,[3] "순은 동이 사람이고, 주문왕은 서이 사람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4][5]

청나라의 제5대 황제인 옹정제화이사상에 따라 만주족의 지배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명나라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논파하고 토론의 경위를 《대의각미록》이라는 책으로 정리해 "본조가 만주 출신인 것은 중국인에게 원적이 있는 것 같다. 은 동이의 사람이었고, 주문왕은 서이의 사람이었는데 그 성덕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4][6]

且夷狄之名, 本朝所不諱. 孟子云: "舜東夷之人也, 文王西夷之人也." 本其所生而言, 猶今人之籍貫耳. 況滿洲人皆恥附於漢人之列, 準噶爾呼滿洲為蠻子, 滿洲聞之, 莫不忿恨之, 而逆賊以夷狄為誚, 誠醉生夢死之禽獸矣.


이적의 이름은 본조는 익히는 바가 아니다. 맹자는 "순은 동이 사람이고, 문왕은 서이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원래 태어난 곳은 지금 사람의 본적과 같은 것이다. 하물며 만주인은 모두 한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준가르부는 만주인을 오랑캐라고 불렀고 만주인은 이를 듣고 분노하고 원망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역적인 증정이 이적이라는 것을 죄로 삼는 것은 참으로(《정자어록》에서 말하는) 취생몽사(아무것도 위하는 일 없이 자각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는) 금수이다.

 
— 대의각미록[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葛伯仇餉,初征自葛,東征西夷怨, 南征北狄怨. 曰: 《奚獨後予》

    — 상서, 중독지고
  2. 十二年辛卯, 王率西夷諸侯伐殷, 敗之于坶野. 王親禽受于南單之臺, 遂分天之明. 立受子祿父, 是為武庚.

    — 죽서기년, 주무왕
  3. 孟子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 地之相去也, 千有餘里;世之相後也, 千有餘歲. 得志行乎中國, 若合符節. 先聖後聖, 其揆一也."

    — 맹자, 이루하
  4. 왕덕웨이 (2020년 3월 16일). “기조 강연 기록 화이의 변 - 화어어계 연구의 새로운 비전”. 《아이치대학 국제문제연구소 기요 =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155)》 (아이치대학 국제문제연구소). 10-11면. 
  5. 스기야마 키요히코. “제8회 "중화"의 세계관과 "정통"의 역사” (PDF). 《"정통"의 역사와 "왕통"의 역사》 (도쿄대학 교양학부). 6면. 2016년 9월 10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6. 송청유 (2010). “고대 중국 문화의 일본으로의 전파와 변형” (PDF). 《중일 역사 공동 연구 보고서》 (중일 역사 공동 연구). 114면. 2021년 10월 8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7. 한동유 (2018년 9월). “청조의 "비한민족세계"에서의 "대중화"의 표현: 《대의각미록》에서 《청제손위조서》까지”. 《동북아 연구 = Shimane Journal of North East Asian Research (별책 4)》 (시마네현립 대학 동북아 지역 연구 센터). 17면.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