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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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돈의문(敦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이다. 서대문(西大門)이라는 명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주 1]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으며, 인근의 새문안로(신문로)나 '새문안교회' 등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말이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것이다. 1915년에 철거되었다.

역사[원본 편집]

돈의문 (1904년)
돈의문 터 앞쪽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는데[1], 축성 당시에는 돈의문이 사직동 고개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2] 1413년(태종 13년)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의 건의로 돈의문을 닫고 서전문(西箭門)을 설치하였는데, 이숙번의 건의로 인덕궁 앞 소동(小洞)에 세워졌다.[3] 1422년(세종 4년) 2월에는 서전문을 막고 다시 돈의문을 열었다.[4] 1711년(숙종 37년)에 돈의문을 새로 지었다.[5]

1915년 3월에는 돈의문을 헐고 도로를 개설하기로 결정하여, 경매 끝에 205원 50전에 염덕기(廉德基)가 목재를 낙찰받았으며 그 외의 귀중한 부속물은 총독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6] 6월에 강제 철거가 완료되었다.[7] 2009년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인근의 서대문 고가차도를 철거하고 2013년까지 돈의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나[8], 현재 돈의문 복원은 예산 및 원형 복원 등의 문제가 겹쳐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다.[9]

돈의문은 서대문구에 소재하였으므로 그 구명(區名)을 서대문에서 따 왔지만,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 때문에 중구 관할 지역에 속한다. 현재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에 '돈의문 터' 라는 표지석이 있다.

건축적 특징[원본 편집]

대략적인 모습은 돌축대 한 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큼지막하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하였다. 둘레의 담장은 곧 한양도성과 연결되었다.

각주[원본 편집]

내용주
  1. 《태조실록》에는 홍화문은 속칭 동소문(東小門), 흥인문은 속칭 동대문(東大門), 광희문은 속칭 수구문(水口門), 숭례문은 속칭 남대문(南大門), 소덕문은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 하였다고 적혀 있다.
참조주
  1. 《태조실록》 10권 5년 9월 24일, 성 쌓는 일이 끝나자 인부들을 돌려 보내다. 각 문의 이름. 국사편찬위원회, 위키문헌
  2. 문화콘텐츠닷컴 - 디지털한양-성곽과 문루, 2015년 11월 22일 확인.
  3. 《태종실록》 25권 13년 6월 19일, 서전문(西箭門)을 열다. 국사편찬위원회
  4. 《세종실록》 15권 4년 2월 23일, 도성의 역사를 마치다. 국사편찬위원회
  5. 《숙종실록》 50권 ​37년 6월 3일, 수구문을 개설함으로 인해 돈의 문루를 조성하다. 국사편찬위원회
  6. 서대문의낙찰 이백오원, 《매일신보》, 1915.03.07.
  7. 최후의서대문, 《매일신보》, 1915.06.11.
  8. 돈의문(서대문) 98년만에 복원…2013년까지,《연합뉴스》, 2009.10.21.
  9. 日帝가 허문 ‘돈의문’ 복원 불투명, 《문화일보》, 2012.12.10.

좌표: 북위 37° 34′ 7″ 동경 126° 58′ 10″ / 북위 37.56861° 동경 126.96944° / 37.56861; 126.96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