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회의
바빌론 회의(Partition of Babylon)는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곧 개최된 대왕의 장군들(디아도코이)에 의한 영토 분할을 결정한 회의이다.
개요
[편집]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급서했을 때, 왕비 록사네는 임신 중이었지만 탄생할 아이의 성별이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남겨진 신하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 순서에 대해서 의견이 충돌했다. 네아르코스는 대왕과 후궁 바르시네의 아들 헤라클레스를 밀었지만, 그는 서자였기 때문에 찬동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한 명의 병사가 알렉산드로스의 이복형 아리다이오스의 이름을 외치자, 그를 지지한 멜레아그로스가 반대한 페르디카스와 대립했다. 페르디카스는 록사네의 복중의 아이가 남자일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출산을 기다렸다가 출산 후에 섭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우메네스의 중재로 타협의 산물로 체결된 협정은 아리다이오스가 필리포스 3세로 즉위하는 대신 록사네의 아들(후에 알렉산드로스 4세)이 남자라면 자신을 필리포스의 공동통치자로 왕위에 올려 그의 섭정으로 페르디카스가 통치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섭정 페르디카스는 대왕의 유장들과 사트라프 들에게 대왕 유언을 배분하는 것을 주도했다.
또한 곧 멜레아그로스와 그를 지지하는 약 300명의 병사는 페르디카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결정 내용
[편집]신임자
[편집]바빌론 회의의 구체적인 결정 내용을 담은 사료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아래의 다섯 사료를 비교하여 정리한다.
- 디오도로스의 《역사총서》(Bibliotheca Historica) XVIII권의 3절
- 쿠르티우스 루푸스의 《알렉산더 대왕전》 10권의 10장
- 유니아누스 유스티누스 초록, 폼페이우스 트로구스 지음 《지중해 세계사》 XIII권 4절
- 포티오스의 저작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에 기록된 아리아노스와 덱시포스의 사료
연임
[편집]인도, 박트리아의 국가는 현직의 사트라프가 통치를 연임했다. 연임이라고 해도 사료에 의한 차이는 발생하고 있다. 또한, 쿠르티우스 루푸스의 사료와 아리아노스의 사료에 이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남아 있지 않다.
수정
[편집]위의 결정은 페르디카스 사후 기원전 321년에 개최된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수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