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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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소속 시절 (2017년)
No. 23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포지션 스몰 포워드
리그 NBA
개인 정보
출생 1984년 12월 30일(1984-12-30) (33세)
오하이오주 애크런
국적 미국의 기 미국
2.03 m (6 ft 8 in)
몸무게 125 kg (276 lb)
선수 경력
고등학교 세인트 빈센트-세인트메리고등학교
드래프트 2003년 / 1라운드 / 1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지명됨
프로 선수 경력 2003년–현재
클럽 경력
선수
2003-2010 미국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0–2014 미국 마이애미 히트
2014-2018 미국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8- 미국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국가대표팀
2008 미국 미국
수상 경력
  • NBA 챔피언 3회(2012, 2013, 2016)
  • 정규시즌 MVP 4회 (2009, 2010, 2012, 2013)
  • NBA 파이널 MVP 3회 (2012, 2013, 2016)
  • NBA 올스타전 MVP 3회 (2006, 2008, 2018)
  • NBA 올스타 14회 (2005-2018)
  • 올-NBA 퍼스트 팀 12회 (2006, 2008-2018)[4]
  • 올-NBA 세컨드 팀 2회 (2005, 2007)
  •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5회 (2009-2013)
  •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1회 (2014)
  • NBA 올해 신인왕 (2004)
  •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4)
  • 네이스미스상 (2003)
  •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 애크런 러버덕스 23번 영구결번[1]

르브론 레이몬드 제임스 시니어(LeBron Raymone James Sr., 1984년 12월 30일 ~ )는 미국 전미 농구 협회(NBA) 소속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프로 농구 선수이다. (그는 팀을 4번이나 옮겼다.) 어머니 글로리아 제임스의 아들이다.[2][3]:22 르브론의 친아버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르브론 자신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팀동료였던 딜론테 웨스트가 글로리아와 수시로 성관계를 즐겼다라는 루머가 있어서 델론테 웨스트가 양아버지라는 이야기고 있다. 킹 제임스(King James)라는 별명을 지녔는데 이 별명은 르브론이 프로농구선수로 데뷔하기 이전부터 자기 스스로 지은 별명이다. 르브론은 친한 친구에게 전화할때에도 "여보세요? 나 킹이야" 라고 한다고 한다. 별명은 킹이지만 실력적으로 리그 전체를 지배하지 못해 동부 킹, 퀸 제임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맨발 신장 203 cm (6피트 8인치) 체중 113kg (250 파운드) 5.2%의 체지방 비율을 가진 선수이다. 참고로 전성기 드웨인 웨이드의 체지방 비율은 3.7%이고 전성기 샤킬 오닐은 1%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르브론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남들보다 한걸음을 더 내딛고, 남들보다 더 위협적으로 팔꿈치를 휘두르는 르브론 제임스가 돌파를 하면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4년간 골든 스테이트와의 4번의 결승전을 치루는 동안, 자신보다 10cm 작고 20kg 가벼운 스테픈 커리를 상대로 고작 19%(6/32)의 야투성공율만을 기록하며 더 이상 그의 피지컬과 트레블링을 조합한 돌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더 디시전 쇼를 시작으로 담합, 탬퍼링, 페이컷을 동시에 구사하며 역사상 전례가 없는 PER 1위, 2위, 4위로 구성된 슈퍼 빅3 구성을 했으나, 마이애미 히트에서의 4시즌 동안 고작 2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10-11시즌 NBA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는 PER기준으로 웨이드, 보쉬, 찰머스에 이어 팀내 4옵션으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덕 노비츠키, 제이슨 키드, 제이슨 테리, 타이슨 챈들러, 숀 메리언(이른바 노키테챈메)로 구성된 슈퍼팀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이보다 더 추할수 없는 패배를 기록하며, 커리어에 씻을수 없는 대못이 박히게 된다.

최근 17-18 NBA파이널이 끝나고 삼육이라는 별칭까지 얻게된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 전적 3승 6패를 기록하면서 역대 랭킹 선정에 있어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더구나 같은 고향출신이자 NBA선배인 찰스 오클리의 말처럼 역사상 르브론 제임스만큼 팀동료, 리그푸쉬, 심판푸쉬를 받은 선수는 없기 때문에, ESPN과 같은 언론의 현역버프가 빠지는 즉시 역대 랭킹 탑10에서 빠지는건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샤킬 오닐, 팀 던컨, 필 잭슨, 그렉 포포비치,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찰스 바클리, 스카티 피펜,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케빈 가넷, 케빈 듀랜트, 론 아테스트 같은 NBA의 전설들은 이미 16-17시즌이 끝난 시점부터 르브론 제임스는 코비 브라이언트를 넘지 못했다라고 일침을 가한바 있다.

마이클 조던은 명실상부 GOAT로써 그의 평가는 신뢰감을 더하며, 역사상 최고의 감독 탑3에 들어가는 필 잭슨과 그렉 포포비치의 평가 또한 깊게 새길만 하다. 90년대를 풍미한 찰스 바클리, 스카티 피펜,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등은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기도 하지만,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농구해설자이자 방송인 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뢰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코비와 르브론 둘 다 함께 뛰어본 샤킬 오닐의 발언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가장 치명적인 평가는 역시 르브론의 절친이자 르브론이 유일하게 코트에서 쓴소리를 하지 못하는 드웨인 웨이드의 평가일 것이다. 웨이드는 진작부터 코비는 우리 시대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수차례 밝혔으며, 코비와 르브론의 비교를 요청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르브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비는 우상이며 나와 르브론과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라는 공식적인 멘트를 남긴바 있다. 웨이드는 시카고 출신으로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를 보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코비 브라이언트를 우리 세대의 조던이라고 표현한 것은 굉장한 존경의 표현이다.

고등학교 입학[편집]

1984년 12월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태어난 르브론 제임스는 어릴 때부터 애크런 주변의 작은 길거리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며 고등학교 농구 감독들의 관심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이미 다듬어진 기술과 선천적으로 뛰어난 운동 신경은 르브론 제임스를 애크런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여러 학교들에서 입학 제의를 받은 르브론 제임스는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인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 위치한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 동안 고등학교 농구 선수로서 활동을 한다.

고등학교 커리어[편집]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르브론 제임스는 바로 학교의 농구 대표팀과 미식축구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해, 르브론 제임스는 평균 21득점, 6.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학교 농구 대표팀을 23승 1패의 기록으로 이끌어 오하이오 주 고등학교 챔피언에 등극시킨다. 두 번째 해, 르브론 제임스는 더욱 발전한 기술로 평균 25.2득점, 7.2리바운드, 5.8어시스트, 3.8스틸의 뛰어난 기록을 내며 학교 농구 대표팀을 두 해 연속으로 오하이오 주 고등학교 챔피언에 등극시키고, 자신은 USA 투데이가 선정한 전미 농구 대표팀에 뽑히는 영예를 누린다. 세 번째 해, 르브론 제임스는 또다시 자신의 기록을 신장시켜 평균 29득점, 8.3리바운드, 5.7어시스트, 3.3스틸을 기록하지만, 학교 농구 대표팀이 오하이오 주 고등학교 챔피언에 오르진 못한다. 우승 실패에도 불구하고, 르브론 제임스는 또다시 전미 농구 대표팀에 선발된다. 두 번째 전미 대표팀 선발 후, 르브론 제임스는 킹 제임스(King James)라는 별명을 지니게 되고 슬램(SLAM) 농구 잡지에 등장하여 유명세를 탄다. 르브론 제임스의 고등학교 마지막 해, 르브론 제임스는 평균 31.6득점, 9.6리바운드, 4.6어시스트, 3.4스틸의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며 역사상 최초로 세 번째 전미 농구 대표팀에 뽑힌다. 세 번째로 고등학교 농구 대표팀을 오하이오 주 고등학교 챔피언에 등극시키는 데 성공한 르브론 제임스는 결국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르브론 제임스는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부터 여러 방송매체와 대기업 스폰서의 도움으로 NBA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2년차 때, 디비젼2 결승전에서 패배하고 준우승을 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NBA로 진출하려는 노력(NBA 룰개정이 필수적이었던)은 실패로 돌아았다. 르브론은 이 시기에 집중된 언론의 관심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리화나를 피웠었다. 이 내용은 르브론의 자서전에도 언급된 내용이다.

NBA 드래프트[편집]

2003년 NBA 드래프트에는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카멜로 앤서니를 포함한 많은 미래의 슈퍼스타들이 참가하였다. 미국 대학 농구 리그 (NCAA) 에서 활약을 한 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르브론 제임스는 2002-2003 시즌을 리그 꼴찌로 마무리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의해 전체 1순위로 지명된다. 지명과 동시에, 르브론 제임스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팀의 주축이 될 선수라는 평을 듣는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3년~2010년)[편집]

입단과 동시에 르브론 제임스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가장 가치있는 선수가 된다.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데뷔 경기에서, 르브론 제임스는 25득점, 9어시스트, 6리바운드, 4스틸을 기록하며 고등학교에서의 유명세가 허위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당시 최강팀인 킹스를 상대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승리를 빼고 모든것을 해냈다." 라는 극찬을 받는다.

명장 폴 사일러스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르브론은 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친다. 특히 팀내 스코어링 1옵션을 담당하던 리키 데이비스 같은 선수를 제빠르게 제거하기도 했다. 르브론은 시즌 평균 20.9득점, 5.9어시스트, 5.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BA 신인상을 수상한다. 르브론의 루키시즌은 그야말로 "진짜(Real)"다운 활약임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 올해의 신인상은 서부 꼴지였던 댄버 너깃츠를 플레이오프로 이끈 카멜로 앤쏘니의 것이어야 했다. 카멜로 앤쏘니는 21.0득점, 6.1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르브론과 카멜로는 모두 각 컨퍼런스에서 매월 이 달의 루키에 선정되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NBA에서도 최고의 운동 신경과 기술을 가진 르브론 제임스는 드래프트 지명 다음해인 2004-2005 시즌부터 현재까지 매번 NBA 올스타에 선발된다. 르브론과 동갑이지만 학년이 빨랐던 카멜로 앤쏘니는 평생 르브론보다 한발 앞서 있었지만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르브론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한다.

2006-2007 시즌, 르브론 제임스는 뛰어난 활약으로 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NBA 플레이오프 동부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디트침공"이라고 표현되는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연속 25득점을 거둔 경기는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 중에 하나로 평가되며, 현재 최고의 NBA해설가로 활약 중인 찰스 바클리는 "지난 10년간(2000년부터 2010년 사이)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칭하면서 정규시즌 최고의 활약은 코비의 81점 경기, 플레이오프 최고의 활약은 르브론의 디트침공을 뽑기도 했다.

그러나 NBA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맞붙게 된 르브론 제임스는 샌안토니오에게 0-4로 스윕당했는데 그 경기 내용 자체도 형편없었다. 르브론은 야유성공율 36.5%, 턴오버 5.5개를 기록하며 당대 최고의 수비수인 브루스 보웬에게 완벽하게 틀어막혔다. 또한 그 당시 5개 포지션 전부 수비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르브론 제임스는 토니 파커를 전담마크하겠다고 선언하고 파커를 막았으나, 토니 파커는 정규시즌보다 6점이나 더 상승한 득점 24.5을 기록하며 파이널 엠비피에 올랐다. 이 때부터 르브론이 막는 선수는 파이널 엠비피를 수상한다는 징크스가 탄생하기 되었다.

2008-2009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르브론의 성장과 더불어서 우승을 하기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한다. 올스타 가드 모 윌리엄스를 포함하여 아직 전성기 폼이 남아있던 벤 월러스, 전성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모습으로 피닉스 썬즈를 반석에 올린 샤킬 오닐, 한경기 최다 3점슛기록을 가지고 있는 배터랑 롤 플레이어 도니엘 마샬, 3점슛 부분에선 리그에서 손꼽히던 부비 깁슨 등 좋은 선수들을 영입, 보강한다. 정규시즌 성적 전체 1위를 기록한 캐벌리어스의 활약을 통해 르브론 제임스는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기 된다. 그러나 모두가 우승을 기대한 시즌이었으나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전성기 드와잇 하워드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결승전 무대에도 올라서지 못했다. 우승은 코비가 이끄는 LA 레이커스가 하게 된다.

2009-2010년, 르브론 제임스는 또다시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르브론은 우승은 커녕, 파이널 무대도 밟지 못했다. 특히 론도가 맹활약한 셀틱스와의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시리즈가 체 끝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는 모습(유명 스포츠해설가 스미브 에이 스미스(SAS)는 2014년 르브론과의 설전이 오가면서 르브론의 태업에 대해 자료를 가지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등으로 당대 최고의 선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 시즌도 우승은 코비가 이끄는 LA 레이커스가 하게 되어 코비는 백투백 파이널MVP를 수상하고 리그 최고의 선수임을 다시한번 각인시키게 된다.

더 디씨전[편집]

2010년 자유 계약 선수가 된 르브론 제임스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고려한다. 르브론 제임스는 FA 자격을 얻기 2년전부터 "대도시 뉴욕으로 가고싶다." "내 친구 제이지가 구단주인 뉴저지 넷츠로 가고싶다" 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TNT 농구해설자 찰스 바클리는 "입닥치고 농구나 해" 라는 비판을 했었으며, 르브론은 발끈하여 "찰스 바클리는 멍청이다." 라고 응답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르브론은 이 이후론 다른 팀에 가고싶다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입을 닥친바 있다.

이미 클리블랜드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르브론 제임스는 ESPN이 주도적으로 꾸민 더 디씨전 쇼에 출연하여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가 있는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할 것임을 갑작스럽게 밝힌다. 나의 재능을 남쪽 해변으로 가져가겠다 (Take my talent to the south beach)는 말은 르브론이 했던 모든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재계약을 하고 NBA 우승을 하기를 기대했던 클리블랜드 팬들은 르브론 제임스의 져지를 불태우고, 르브론 제임스의 나이키 광고인 we are all witnesses를 we are all quitnesses로 바꾸는 등 르브론 제임스의 이적 결정에 항의했고, 르브론은 언론과 팬들로부터 비난과 비아냥을 듣게 된다.

방송을 통해서 자신의 고향이자 친정팀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은 르브론이 최초이자 유일한 것이어서 당시의 반응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르브론이 마이클 조던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 위대한 선수로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전세계 농구팬들은 르브론 제임스가 더 이상 마이클 조던에 비견될 수 없는 영혼없는 선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이애미 히트 (2010년~2014년)[편집]

파이널에서의 두 번째 좌절 (2010년~2011년)[편집]

드웨인 웨이드는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MVP를 다투던 리그 최고의 선수였으며, 크리스 보쉬도 25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한 리그 탑3 빅맨이었다. 르브론, 웨이드, 보쉬는 각각 09-10시즌 기준 PER(Player Efficiency Rate) 1위, 2위, 4위를 기록했으며 나이는 미국 기준으로 20대 중반이었다. 이 3명이 한팀에 뭉치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축구로 치면 메시, 호날두, 네이마르가 한팀에서 뛰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현상을 보고 마이클 조던은 슈퍼팀 결성 첫번째 시즌에 우승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10-11시즌에 아무팀이나 빨리 우승해라. 그 이후부터는 히트가 8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10-11 시즌, 초반 20경기에서 11승 9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마이애미 히트는 그 이후부터 팀 수비 정체성이 확립되기 시작하면부터 연승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손쉽게 동부를 제패한 빅3의 마이애미 히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코비의 LA레이커스를 격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한 댈러스 매버릭스와 맞붙게 된다. 어느 누구도 댈러스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전력 차이가 확연한 시리즈였다.

예상대로 1차전을 손쉽게 제압한 르브론의 마이애미는 갑자기 2차전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다. 특히 독감으로 고생한 댈러스의 에이스인 노비츠키를 공식석상에서 조롱한 르브론과 웨이드의 행동은 역사에 남을 만한 잘 못 된 행동으로 기억 될 것이다. 결승전에서 이겼으면 모르겠는데 너무나 처참하게 처발려서 이 추태가 더욱 추하게 되었다.

더크 노비츠키, 제이슨 키드, 제이슨 테리, JJ 바레아 등 모두가 활약한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한 마이애미 히트. 그 패배의 중심에는 르브론 제임스가 있었다. 실제로 웨이드와 보쉬는 자기몫을 충분히 다했으나 결승전의 향방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5차전 경기에서 르브론은 8득점에 그치는 (공격시도도 적었고 의욕조차 없어보이는 엉망진창 최악의 경기) 파이널 역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마이애미 히트 팀 전체에 똥물을 뿌려버리게 된다.

이보다 더 추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패배한 르브론 제임스는 패배가 확정된 이후 공개적인 기자회견장에서 "내 안티팬들은 이제 일터로 돌아가서 하루벌어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니들 생활이나 걱정해라. 나는 부자고 니들이 욕해봤자 잘먹고 잘산다." 라는 리얼월드 발언으로 미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악의 실언을 하게 된다. 실제로 르브론을 맹열하게 비난하는 수많은 안티팬들이 르브론을 증오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로 이 "리얼월드" 발언을 꼽기도 한다.

이미 팀을 버리고 마이애미로 떠날때부터 언급된 부분이지만, 11파이널 패배와 리얼월드 발언으로 이어지는 르브론의 실패로 인해, 르브론은 절대적으로 조던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정되어 버렸다. 조던은 커녕 20년간 한팀을 지키면서 5번의 우승을 차지한 코비, 던컨과 같은 레전드들도 넘을 수 없게 된다.

갈망하던 우승 쟁취와 백투백 우승 (2011년~2013년)[편집]

2011-2012 시즌, 르브론 제임스는 자신의 기술과 플레이를 한 걸음 더 상승시키며 또다시 NBA 최고 선수상 (MVP) 를 향한 질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2012년 NBA 파이널 결승에서 르브론은 케빈 듀란트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상대로 시리즈 4대1 성적으로 우승을하고 동시에 파이널MVP을 수상하게된다.

2012-2013시즌 중 제임스는 히트를 구단 최고 기록이자 NBA 역사상 두 번째로 긴 27연승을 거두며 정규시즌을 66승 16패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다. MVP 투표에서는 만장일치를 한 표차로 아깝게 놓치고 압도적인 지지로 네 번째 MVP 상을 받는다. 2013년 파이널에 진출한 제임스와 히트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격돌하게 되고,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이기며 제임스는 두 번째 우승과 파이널 MVP를 거머쥐게 된다. 특히 2-3으로 지고 있는 파이널 6차전에서, 르브론는 "James Won't go. Rebound Bosh.Back to Allen. His three pointer...BANG". 이라는 NBA파이널 역사상 최고의 슛으로 평가받는 레이 앨런의 인생구제샷으로 겨우겨우 파이널 1-3을 모면하게 된다.

현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Back to Home(2014년)[편집]

2014년 6월, 르브론 제임스와 마이애미 히트는 4년 연속 NBA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때만해도 르브론 제임스의 광팬들(한국에선 릅퀴, 미국에선 Bronsexuals으로 표현됨)은 이미 쓰리핏을 달성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샌안토니오와의 파이널 1차전.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 전체의 판세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며 다리에 쥐가 났다는 핑계로 코트밖으로 실려나가는 참극을 보여주게 된다.

그 이후의 경기는 샌안토니오의 일방적인 경기가 되었다. 특히 르브론 팬들은 존재조차도 몰랐던 신인급 선수인 카와이 레너드에게 르브론 제임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수에서 완벽하게 지배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카와이 레너드는 당연히 르브론 제임스를 압도한 공으로 파이널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샌안토니오는 레이 앨렌에게 무너졌던 2013년 파이널을 완벽하게 복수하는데 성공한다.

파이널 시작하기 전 만하더러도 이미 승리한거처럼 도취되었던 릅팬들은 14년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역대급 팀으로 둔갑시키기에 이른다.

이렇게 완벽한 초킹 퍼포먼스와 함께 르브론 제임스는 마이애미 히트에서의 4년 동안 고작 2번의 우승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웨이드와 보쉬가 각각 늙었다고 판단한 르브론은 (웨이드, 보쉬는 03년 드래프트 동기지만 대학을 다니고 NBA에 입성하여 르브론보다 나이가 많음) 결국 태어나고 자란 오하이오주로 복귀,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

카이리 어빙, 케빈 러브, 그리고 유럽출신 명장 데이빗 브렛 감독과 함께 시즌을 시작하였으나, 브렛감독과의 불화, 어빙과의 불화를 겪으면서 태업까지 일삼게 된다. 특히 "아버지의 마음"으로 어빙이 실패하고 깨닫는것을 지켜보겠다고 한 부분은 걸작이었다.

클리블랜드는 동부지구 챔피언이 되어 파이널에 진출하지만 그해 파이널에서는 서부 챔피언 골든스테이트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우승을 내어주게 된다. 당시 제임스는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팀 동료였던 카이리 어빙과 케빈 러브가 부상으로 아웃되어 있는 악조건 속에서도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선전하면서 준우승팀의 선수임에도 파이널 MVP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파이널 MVP는 르브론을 압도적으로 제어한 12년차 베터랑 안드레 이궈달라가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르브론이 막거나 르브론과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파이널 MVP에 선정되는 징크스를 이어간다.

클리블랜드로 복귀한 이후 2번째 시즌인 2015-16 시즌에도 역시 동부 챔피언의 위치에 올랐으며 골든스테이트와 2년 연속 파이널에서 조우하게 된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4차전까지 1승 3패로 몰리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었지만 이후 5차전부터 내리 3연승을 거두며 기적같은 역전 우승을 일궈내게 되었다. 파이널에서 1승 3패로 시리즈를 리드당하던 팀이 카이리 어빙의 맹폭과 커리를 앞에두고 던진 치명적인 스탭백 3점슛으로 시리즈 전적을 뒤집고 우승하게 된다. 이때 파이널 MVP는 르브론 제임스가 차지했으나 일각에서는 어빙이 탔어야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2015-16 시즌의 파이널 우승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우승이자 오하이오 주에 있어 4대 스포츠 역사상 52년만의 우승이었다. 당시 르브론은 파이널 7차전이 끝난 이후의 인터뷰에서 클리블랜드에게 이 우승을 바친다는 인터뷰를 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Cleveland! This is for you!)

플레이 스타일[편집]

농구 기술 측면에서 볼때, 르브론은 트리플쓰렛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일정하지 못한 불안한 점퍼 능력 때문이다. 르브론은 그 대신 그의 시야와 돌파능력, 두가지를 통해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코트를 넓게 분산시켜 상대 수비수들이 페인트존에 밀집하지 못하게 하는 슛이 좋은 팀동료들을 항상 배치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르브론 제임스는 3점슛이 가능한 파워포워드, 크리스 보쉬나 케빈 러브와 같은 선수와 조합되지 못하면 위력을 잃게 되며, 정통센터와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르브론의 신체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축복받은 신체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뛰어난 점프력과 탄탄한 체격, 웬만한 몸싸움에도 밀리지 않는 근력과 균형 잡힌 신체 밸런스를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부상도 거의 당하지 않아 금강불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신체능력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르브론 본인이 혹독한 식단 조절 및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개인 관리를 통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허나 농구는 육상경기 아니라 슛을 넣는 재주가 필요한 경기이고, 르브론은 그 점에서 자신만의 스킬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축복받은 신체능력을 100% 코트에 발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르브론은 비단 신체조건뿐만 아니라 농구 센스 역시 높은 편이어서 코트 위의 동료들을 활용하는 패싱능력이 뛰어나며 본인이 직접 마무리할 수 있는 득점력 역시 최상급이다. 르브론의 주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이지만 워낙에 뛰어난 패싱능력과 코트 비젼을 갖춘 덕분에 포인트가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실제로 스몰포워드 포지션으로 경기를 뛸 때도 본인이 직접 포인트가드처럼 볼 운반 및 게임 조율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르브론의 경기 운영 능력은 정통 포가의 그것에 비교할 때 과장된 점이 많으며, 특히 르브론이 탑에서 진두지휘하는 경기 모습은 전성기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위력이 반감되고 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르브론은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선수가 된 이후, 단한번도 제대로된 농구 기본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주 득점 루트는 엄청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이나 서두에서 밝힌바와 같이 자신보다 20kg 적은 스테픈 커리도 뚫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르브론의 돌파는 오픈코트에서 가속을 받은 상태에서 위력이 나오며, 정지된 상태에서 상대방의 타이밍을 뺏고 퍼스트스탭을 밟는 드리블, 페이크 능력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이즈가 비슷하고 팔이 길고 순발력이 좋고 손이 빠르고 운동능력이 탁월한 카와이 레너드와 안드레 이궈달라가 수비할 경우, 돌파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르브론의 스피드와 피지컬을 동반한 돌파 공격은 매우 위력적이며 돌파 이후 외곽으로의 패스를 통해 동료들에게 오픈 3점슛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레이업이나 덩크로 직접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력적인 돌파에 비해 중장거리 지역에서의 점프슛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단조로운 공격루트가 단점으로 지적 받아왔다. 때문에 최근에는 미들슛, 3점슛, 포스트 플레이 등 다양한 공격방식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전히 돌파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르브론은 커리어 내내 포스트업에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르브론이 2011년 NBA 파이널에게 크게 실패한 가장 큰 원인도 바로 자기보다 10~20cm 작은 가드들 조차 포스트업으로 요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1년 이후 르브론의 포스트업은 어느정도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단지 자기보다 작은 선수들을 상대할 때에만 한정되어 있다. 실제로 진정한 포스트업 스킬 마스터들은 자기보다 크고 강한 상대들을 상대로 페인트존 근처에서 득점하는 것이 가능하다. 르브론의 포스트업은 힘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림쪽으로 우겨넣는 수준에 그쳤으며, 왼쪽, 오른쪽 턴어라운드 점프샷, 러닝 훅슛 등 포스트업 자세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조합을 갖추지 못했다. 이것은 노력 부족이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공을 다루는 재능이 없는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이는 포스트업 기술에 있어서 역사상 최고선수라고 여겨지는 하킴 올라주원과의 연습 동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광고[편집]

더 읽기[편집]

  • Freedman, Lew (2008). 《LeBron James : A Biography》. Westport, CT: Greenwood Press. ISBN 978-0313343612. 
  • Jones, Ryan (2005). 《King James : Believe The Hype : The LeBron James Story》. New York: St. Martin's Press. ISBN 0312349920. 
  • Morgan, David Lee (2003). 《LeBron James : The Rise of a Star》. Cleveland: Gray & Co. ISBN 1886228744. 
  • Pluto, Terry; Windhorst, Brian (2007). 《The Franchise : Lebron James and the Remaking of the Cleveland Cavaliers》. Cleveland: Gray & Co. ISBN 1598510282. 
  • Simmons, Bill (2009). 《The Book of Basketball》. Cleveland: Ballantine Books. ISBN 9780345520104. 

각주[편집]

  1. 프로야구팀(마이너리그 베이스 볼 더블 A팀)이면 제임스의 고향인 애크런을 연고로 한 팀이다.
  2. “LeBron James Stats, News, Videos, Highlights, Pictures, Bio”. ESPN. 2013년 3월 2일에 확인함. 
  3. Jones, Ryan (2003). 《King James: Believe the Hype》. New York: St. Martin's Griffin. ISBN 0-312-34992-0.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