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릉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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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릉(德陵)은 조선추존왕 목조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에 있다.[1]

개요[편집]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의 능이다. 목조는 1274년(고려 원종 15년) 음력 12월에 사망하였으며, 처음에는 경흥부(慶興府)에 장사지냈다가 1410년(태종 10년) 음력 10월 28일 현재의 덕릉 자리로 천장하였고, 덕릉은 언덕 서편에, 부인 효공왕후안릉은 동편에 봉분을 마련하였다.[2][3]

한편 1392년(태조 원년) 조선을 개창한 태조는 이 해 음력 8월 8일 아들 이방원을 목조가 묻힌 동북면 지역에 보내어 태조의 4대조에게 제사를 올리고, 각 무덤에 능호를 붙였다. 이때 목조의 무덤에는 덕릉(德陵)의 능호가 붙여졌으며, 부인 효공왕후의 무덤에는 안릉(安陵)의 능호가 붙었다.[4] 이후 음력 10월 28일에 능지기로 권무(權務) 2명과 민가 몇 호를 수릉호(守陵戶)로 두었으며, 동시에 재궁을 함께 마련하였다.[5]

1397년(태조 6년)에는 정도전을 동북면 지역의 동북면 도선무 순찰사로 보내어 유달리 거리가 멀어 그 제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던 덕릉과 안릉의 제사를 함께 맡아보게 하였으며,[6] 1398년(태조 7년) 음력 3월 11일에는 그 제사를 청해도 찰리사가 관장하게 하였다.[7] 훗날 덕릉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비석이 마모되었으며,[8] 이에 정조 때 덕릉 등에 대해 재수축을 시행하였다.[9]

한편 2009년 6월 27일 대한민국에 있는 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나, 덕릉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10]

출처[편집]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덕릉〉
  2. 《조선왕조실록》태조 1권 총서 6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태종 20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 8년) 10월 28일(신유) 1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태조 1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 25년) 8월 8일(정사) 1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태조 2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 25년) 10월 28일(병자) 1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태조 12권, 6년(1397 정축 / 명 홍무 30년) 12월 22일(경자) 1번째기사
  7. 《조선왕조실록》태조 13권, 7년(1398 무인 / 명 홍무 31년) 3월 11일(무오) 3번째기사
  8. 《조선왕조실록》영조 69권, 25년(1749 기사 / 청 건륭 14년) 3월 7일(을묘) 1번째기사
  9. 《조선왕조실록》정조 15권, 7년(1783 계묘 / 청 건륭 48년) 3월 24일(을묘) 1번째기사
  10. 노형석 (2009년 6월 27일).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 《한겨레》. 2017년 5월 4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