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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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金舒玄)
생애 564년 ~ ?
출생지 신라 금성
사망지 신라 금성
별명 일명은 김소연(金逍衍), 김서운(金舒雲)
복무 신라
최종 계급 양주총관, 소판
지휘 신라 육군
주요 참전 낭비성 전투
기타 이력 신라 태종 무열왕의 국구

김서현(金舒玄, 564년 ~ ?)은 가야의 왕족이자, 신라의 군인이다. 신라 시대의 명장 김유신의 아버지로, 가야 왕족의 후예이며, 신라진골 귀족이다. 만노군의 태수와 대량주 도독, 소판(蘇判) 등을 역임했으며, 백제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두 딸 문희보희태종무열왕의 제2부인, 제3부인이 되었다. 다른 이름은 소연(逍衍[1][2]), 또는 서운[3]. 본관은 김해.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11대 손이며 금관가야의 왕 구형왕의 손자였다. 아버지는 신주군주(新州軍主)를 역임했던 김무력(金武力)이고, 어머니는 법흥왕의 비 보도부인 박씨의 여동생 박씨였다. 아버지 김무력구형왕의 셋째 아들이었고, 그에게는 위의 형 세종과 동생 무득이 있었다. 만노군(萬弩郡:지금의 충청북도 진천) 태수로 있을 때 갈문왕(葛文王)의 손녀 만명(萬明)과 결혼하여 유신을 낳았다.

만명과의 결혼[편집]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김서현의 생애가 간략하게 나온다. 김서현이 하루는 길을 가다 진흥왕의 조카인 만명(萬明)을 만났는데, 마음에 들어 결합하게 되었다. 이후 김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만명을 데려가려 하자, 그제서야 만명의 부친인 숙흘종(肅訖宗[4])이 둘의 관계를 알아채고 분노하여 만명을 설득했으나 듣지 않자 별실에 가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쳐서 지키는 사람이 도망가자, 만명은 탈출하여 만노군으로 갔다. 김서현은 망한 가야국의 왕족으로 그의 이모가 신라 법흥왕의 비였으므로 멀게나마 신라 왕실의 인척이었다. 그러나 진골 귀족에 편입되었음에도 가세가 한미하여 숙흘종은 그를 반대하였다.

또 어느 날 김서현은 형혹성(熒惑星)과 진성(鎭星)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꿈을 꾼다. 또한, 만명도 황금 갑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구름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임신하여 20개월 만에 김유신이 태어난다.(595년)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자 김서현은 자신이 길몽을 꾼 경진일(庚辰日)을 따서 이름을 유신(庾信)으로 지었다. 당시 서현은 '경'과 '유'의 글자가 비슷하고, '진'과 '신'의 음이 비슷하며, 같은 이름을 가진 북주의 표기대장군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어 아들 김흠순과 딸 문희, 보희가 태어났다

신라 관직 생활[편집]

양주(良州: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총관이 되어 백제와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진평왕 51년인 629년에는 소판으로 재직 중 장군 김용춘(金龍春) 및 김유신 등과 함께 대장군이 되어 고구려낭비성(娘臂城, 뒤에 충청북도 청원군)을 공략하였다. 초반 전황이 불리하였으나, 김유신이 앞장서서 적을 격파하니, 결국 5천여 명을 사살하고 1천여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당시 김서현의 벼슬은 소판(蘇判, 제3관등)이었다.

만노군의 태수와 대량주 도독을 거쳐 소판에 이르렀다. 이후 김서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 태종무열왕조에 김서현의 벼슬이 각찬(角湌, 제1관등)이라는 언급만 나와 있다. 반면, 김유신 열전은 김서현의 최고 관직이 소판이라고 전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벼슬이 각간(角干)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梁州諸軍事)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후대에 추증된 벼슬로 추정된다.

가계[편집]

  • 조부 : 구형왕(仇衡王, ? ~532/562 재위: 521~532/562)
  • 조모 : 계화부인(桂花夫人, 생몰년 미상)
    • 아버지 : 김무력(金武力, 518~579)
    • 어머니 : 박씨(朴氏)
    • 어머니 : 아양공주(阿陽公主, 생몰년 미상)
  • 장인 : 김숙흘종(金肅訖宗, 생몰년 미상)
  • 장모 : 만호부인(萬呼夫人, 생몰년 미상)

김서현이 등장한 작품[편집]

관련 문화재[편집]

출전[편집]

父舒玄 官至蘇判大梁州都督安撫大梁州諸軍事 按庾信碑云 考蘇判金逍衍 不知舒玄或更名耶 或逍衍是字耶 疑故兩存之 아버지 서현(舒玄)은 벼슬이 소판(蘇判)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梁州諸軍事)에 이르렀다. 그런데 유신비(김유신의 비석)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소판 김소연이다.”라고 하였으니, ‘서현(舒玄)’이 고친 이름인지 아니면 ‘소연(逍衍)’이 그의 자(字)인지 알 수 없다. 확실치 않아서 두 가지를 모두 기록해둔다.

— 《삼국사기》<제41권 열전 제1 김유신 상>

五十一年 秋八月 王遣大將軍龍春舒玄 副將軍庾信 侵高句麗娘臂城 麗人出城列陣 軍勢甚盛 我軍望之懼 殊無鬪心 51년 가을 8월, 임금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고구)려인이 성에서 나와 진을 쳤는데, 군세가 매우 강성하여 우리 병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며 싸울 생각을 못했다.

— 《삼국사기》<제4권 신라본기 제4 진평왕 51년조>

武力伊干之子 舒玄角干 金氏之長子曰庾信 무력(武力) 이간(伊干)의 아들인 서현(舒玄) 각간(角干) 김씨의 장자는 유신(庾信)이다.

— 《삼국유사》<제1권 기이 제1 김유신>

출처[편집]

각주[편집]

  1.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김서현의 다른 이름이 김소연(金逍衍)이라고도 전한다. 소연이 다른 이름인지, (字)인지는 확실치 않다.
  2. 이병도가 번역한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서현과 김소연은 같은 이름을 다른 한자로 적은 것 뿐이다. 네이트 한국학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주석 26 참조
  3. 역사 인물 편찬 위원회 지음, 불멸의 세월: 김유신 (출판사 역사디딤돌 | 2009) 188
  4. 입종 갈문왕의 둘째 아들이자 진흥왕의 동생, 법흥왕의 조카이자 외손

참고 문헌[편집]

  • 역사 인물 편찬 위원회 지음, <<불멸의 세월: 김유신>> (출판사 역사디딤돌 | 2009)
  • 김시우, <<가락국 천오백년 잠깨다>>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