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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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祈雨祭)혹은 도우(禱雨)[1]하지가 지나도록 가 오지 않아 가물 때에 비가 오기를 바라며 지내는 제사이다. 방법으로는 파기, 디딜방아 훔치기, 물병 거꾸로 매달기 등이 있었다.

한국의 기우제[편집]

기우제는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제로서 이를 지내려면 우선 도랑과 밭뚝길을 깨끗이 한 다음에 12차례의 순서를 거쳐야 한다.

1차, 삼각산·목멱산(木覓山)·한강에 당하3품(堂下三品)의 관을 파견하고
2차, 용산강 저자도(楮子島)에 종2품(從二品)관과
3차, 풍운뇌우수산천(風雲雷雨水山川)의 영사(靈祀)에 종2품관을,
4차, 북교(北郊)에 종2품관과 사직에 정2품관(正二品)관을 보내서 제를 지냈는데, 이 치제(致祭)에서 용신(龍神)에게 제(祭)를 올렸다.
5차, 종묘에서 정2품 관조(官祖)가 치제를 하고
다시 6차, 삼각산 목멱산(木覓山)·한강에서 치제하고 범머리(虎頭)를 가라앉힌다. 이 범머리를 가라앉히는 풍습은 전국의 곳곳에서 기우제에 쓰인 것이다. 밀양의 백연이나 서산의 이매연(鯉埋淵), 고산(高山)의 용연(龍淵), 밀양홍천가리산(加里山)에서 범머리를 용연에 가라앉혀서 비가 내리기를 기도했다.

용(龍)이 강우(降雨)제에서 신격자가 되었는데 용이 잠자고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 가뭄이 계속되기 때문에 용의 적수인 호랑이를 용이 있는 연못에 집어 넣어서 용이 잠에서 깨게 하는 것이다. 용이 활동하면 비가 내린다. 그러기 때문에 용을 잠에서 깨게 하는 방법은 호랑이 머리만이 아니고 용이 있는 연못의 물을 더럽히는 방법도 있다. 봉산(鳳山) 신룡담(神龍潭)에 동리 사람들이 오물을 던져 물을 흐리게 하였더니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져 비가 내렸다고 한다. 비가 어느 정도 내린 다음 다시 연못에서 오물을 건져 물을 맑게 하였더니 비가 개었다고 한다.

근래에는 이와 비슷한 기우의 행위로서 개울 있는 여기저기의 바위에 의 피를 뿌리고 그 핏물 속에서 동리 부인들이 속옷차림으로 미역을 감는다. 그러면 하늘의 신령님이 더러운 것을 없애기 위해 비를 내리고 또 남자인 신령님이 부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깨끗한 빗물에 미역을 감게 하기 위해서 비를 내린다. 이 행위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더러움과 개끗함이라는 신앙관념이다. 이런 2분관(二分觀)은 음양(陰陽)의 관념에 쉽게 융합된다.

7차와 8차에도 정2품관이 용산강이나 산천운사(山川雲社)에서 제사를 올린다. 위계가 높은 제관자를 파견함은 신령님에게 치성을 다하는 태도인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때에 하늘의 신령님은 소원을 들어준다.
9차 치제하고 모화관의 연못가에서 석역동자의 기우(祈雨)를 행한다. 이 기우제는 10차에서는 경회루의 연못에서, 11차에서는 종묘의 춘당(春塘) 연못에서 올려진다. 석역동자 150명이 푸른 옷·기고(祈袴)·전대(纏帶)·행전·족발(버선)·광소당지(廣小唐只)·숙마혜(熟麻鞋)를 갖추고 물위에 떠있는 석역이 들어 있는 물동이를 두드리고 징을 울리면서 큰 소리로 "도마뱀아 도마뱀아,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해서 큰비를 내리게 하라, 그러면 놓아주리라"고 외친다. 동자군제(童子軍祭)란 바로 위의 제를 말하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병에 물을 담고 그 병 속에 버드나무 가지를 넣고 향을 피우며 방방곡곡에 시렁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모여서 비를 부른다. 오방토룡제(五方土龍祭)가 끝차례로 올려진다. 흙으로 만든 용을 동서남북과 중앙노상에 놓고 채찍질해 가면서 제를 지낸다. 동교(東郊)에서 청룡, 남교에서 적룡(赤龍), 서에서 흰 용, 북에서 검은 용 그리고 중앙 종루가(鐘樓街)에서 노란 용을 만들어 놓는다. 헌관과 감찰도 관홀(冠笏)을 갖추고 사흘 동안 제를 지내는데, 치제(致祭)때에 용왕경(龍王經)을 읽는다.

이 동안에 기우 7사(祈雨七事)가 지켜진다. 7사는 다음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1. 옥에 갇힌 자와 실직자를 처리한다.
  2. 과부·고아들을 위로한다.
  3. 정부에서의 용역을 덜어준다.
  4. 현명한 사람을 거진(擧進)한다.
  5. 탐하고 사악한 것을 없앤다.
  6. 남녀를 명합(命合)하고 원한을 치유한다.
  7. 선(膳)을 줄이고 가락을 금한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보면 기우제는 위에 언급한 곳 외에 모화관(慕華館)·경회루(慶會樓)·춘당대(春塘台)·선농단(先農壇)·한강변(漢江邊)에서 올려졌다. <용재총화>가 전하는 기우제의 장소는 종묘사직과 흥인(興仁)·숭례(崇禮)·돈의(敦義)·숙정(肅靖)의 4대문이었다. 이 기우제에 이어서 비가 오면 수한보제(水旱報祭)가 행해졌다.

주석[편집]

  1. 네이트 백과사전 '기우제'. 2010년 1월 17일에 확인.

참고 문헌[편집]